[50회 천마문화상 - 우수상(소설)] 그네는 어떤 얼굴로 흔들리나
[50회 천마문화상 - 우수상(소설)] 그네는 어떤 얼굴로 흔들리나
  • 김민(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2)
  • 승인 2019.11.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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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태는 얼마 전에 표정을 잃었다.

 표정을 완전히 잃기까지 이성태는 예순셋의 세월을 다양한 표정 속에서 살았다. 그중엔 진실한 표정이 있었는가 하면 거짓된 표정도 있었는데 대개 그것들은 의식해서 짓는다기보다 살아오면서 내면화된 처세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영 모르겠는 사람이 인사를 걸어와도 아주 반갑다는 듯 살갑게 마주잡는 악수 같은 것, 이성태는 그럴 때면 이 내밀한 가식이 몸서리치게 싫다가도 이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은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고등학교 동창 김윤식의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 그날은 동창회가 있고 하루가 지난 날 밤이었는데, 김윤식이 동창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검은색 승용차에 정면으로 부딪혀 끝내 숨졌다는 소식을 다음 날에 전해들은 것이다. 어제까지 보았던 동창의 부고라고는 해도 그와 별로 접점이 없이 지냈던 이성태로서는 안타깝다는 감회는 있어도 슬프다는 감정은 딱히 느끼지 못했으나 식장 안에 들어서니 줄지어 앉아있는 친구들을 보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글썽글썽 차올랐다.

 “상심이 정말 크시겠스읍……

 상주인 부인을 다독이다가 급기야 이성태는 끄윽끄윽, 하고 울어버렸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울음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 때까지 지속됐다. 그런 이성태를 친구들은 멀찍이서 바라보며 쟤가 저럴 정도로 김윤식과 연이 깊었나?” 싶다가도 정이 참 많은가보네하면서 부축해 끌고나갔다. 이성태는 주변으로부터 내려지는 그런 평판이 본인의 앞날에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살아온 세월의 반 이상을 영업직과 서비스직을 전전하며 지낸 그의 삶이 그것을 증명했다. 이성태는 언제가 됐든 일후에 꼭 도움이 되리라고 여기며 마주잡은 양손을 쉽사리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이성태가 어느 날 표정을 완전히 지우게 된 것은, 아무래도 그날의 영향이 컸다.

 그날, 이성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파트단지로 배달된 택배들을 동과 호수별로 분리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가 저기요, 선생님, 하고 이성태를 불러 세웠다. 경찰과 대동한 그들은 젊은 부부와 늙은 여인이었다. 그들은 사라진 아이의 행적을 쫓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경비실에 들이차 CCTV 화면을 뒤졌다. 녹화 영상을 내림차순으로 역행하며 하나하나 짚어보다가 여깄네, 여기.” 하면서 경찰이 단지 내 놀이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화면엔 늙은 여인과 아이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놀이터로 들어섰다. 그네를 타고 노는 아이를 여인이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었다. CCTV 화면의 일부가 나뭇잎에 가려져 아이의 모습은 그네의 궤적을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빈 그네만 흔들거렸다. 그 후에도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늙은 여인은 멍하니 오랜 시간 서 있다가 홀연히 자리를 떴다.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되돌려보다가 젊은 남자가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러는 바람에 이성태의 심장도 쾅, 하고 내려앉았는데 엄마, 보세요. 엄마 앞에서 애가 사라졌잖아요!” 하며 남자가 여인에게 대답을 재촉하듯 다그치는 것을 곁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여보……

 젊은 여자가 그만하라는 듯 남자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늙은 여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는 아무도 타지 않은 그네가 흔들리는 장면만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도토리 숨겨놓은 델 까먹은 다람쥐처럼 여인의 두 눈엔 초점이 흐렸다.

 

 단지 외벽을 높이고 철조망도 둘러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횡횡한 사건도 있었고 하니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단속하자는 것이었다. 요즘엔 그렇지 않은 아파트가 없다며 이참에 단단히 채비를 하자고 너도나도 거들었다. 그러면 안 되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이성태는 생각했다. 이성태가 일하고 있는 아파트는 동네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었고 이웃주택가들과 시내로 이어지는 대로변의 중간에 위치해 아침과 저녁으로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이성태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인근주민들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요.”

 입주자 회의 공고를 주문하던 입주자대표의 두 눈이 커졌다.

 “반발이요? 무슨, 아니, 누가 반발을 해?”

 “아무래도 아침저녁으로 출퇴근길이나 등하굣길로 삼는 사람들이……

 여보세요, 하며 입주자대표가 이성태의 말을 끊었다.

 “지금 누가 누구 편을 드는 거예요? 여기가, 지금 여기가 우리 아파트잖아, 여기가. 내가 뭐 남의 땅에 줄긋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우리 땅에, 그동안 봐준 것만 해도, ?”

 배은망덕, 하며 입주자대표는 존댓말과 반말을 애매하게 섞으며 이성태를 나무랐다.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이성태는 위선과 의욕이 앞서 공연히 받지 않아도 될 수모를 겪었다고 여기며 앞으로는 적정선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적당히 거리를 두자. 그저 나는 일할 뿐이다, 이성태는 속으로 되뇌며 억지로 잇몸을 보였다.

 그런 이성태에게 젊은 여자는 곤혹이었다. 처음 며칠간은 급조한 전단지를 붙이더니 나중에는 제법 모양새를 갖춘 전단지를 아파트단지 입구에서부터 나눠주었다. 입주자들도 초반엔 애처로운 심정으로 말을 섞기도 했으나 실종된 아이와 비슷한 또래 애들만 보면 일일이 붙잡고서 얼굴을 확인하는 통에 이성태로서는 출입을 제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죄송해요, 제가. 이러면 안 되는데.”

 죄송할 건 또 뭔가. 다만 이성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뭐라고 심상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로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러면 그녀는 뭐가 못내 아쉬운 듯 자꾸만 뒤를 돌아봤는데 이성태는 손을 흔들어볼까, 하다가 지나치다는 자기검열에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 뒤로도 여자는 종종 이른 아침부터 단지를 돌며 틈틈이 전단을 붙였고 이성태는 보고도 못 본 체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인근 야산에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이성태는 한낮에 전해 들었다. 주름이 깊은 데에 비해 머리가 검었던 이웃 노인에게서였다. 노인은 저 멀리 아파트 통로에서부터 유모차를 드르르그르르 끌고 걸어오더니 이성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다 대뜸 유모차에 실린 검은 비닐봉투를 내밀었는데 쓰레기를 분리하던 이성태는 그것이 쓰레기인 줄로만 알고 받아들었다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제법 묵직해 열어 보니 빨간 자두였다.

 “맛봐라.”

 노인이 이성태 발치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뒷산에 열매가 맺혔는데 실하더라. 나도 먹고 영감도 먹이고 이웃에도 나눴는데 아직도 많이 남는다. 먹어라.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나이가 안 드는 건 다 이것저것 안 가리고 잘 먹어서다. 근데 요새는 통 못 잔다. 오래 살아 또 뭣하냐. 제 명을 채워 사는 것도 다 박복이다.”

 “? 그게 무슨……

 이성태가 도통 무슨 말인지를 몰라 하는데도 노인은 자, 얼른, 하면서 막무가내로 자두 먹는 시늉을 했다. 미심쩍어 하면서도 하는 수가 없어 이성태는 자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자두 표면에 치열이 도드라졌다. 노인은 흡족한 얼굴로 이 얘기에서 저 얘기로 무슨 맥락이랄 것도 없이 비약하고 건너뛰며 이성태와 눈도 안 맞추고 이야기보따리를 늘여놓았다.

 “하나 있는 딸년은 지 에미가 뭐하고 사는지 아주 관심도 없다. 죽든지 말든지 하는 것 보면 생판 남이다. 어찌 이지경이 되도록 전화 한 통이 없을 수가 있냐. 이 집이건 저 집이건 내가 봤을 땐 그냥 난리도 아니다.”

 이성태는 듣는 둥 마는 둥 간만에 맛보는 자두가 겉은 단데 속은 좀 시다는 생각을 하며 입안에서 자두 씨를 굴렸다. 그때 노인이 봉지가 들린 이성태의 손을 꼭 붙들었다.

 “듣고 있냐.”

 이성태가 놀라서 노인의 손을 뿌리치다가 그만 자두 씨를 삼켰다. 뭔 노인이 손아귀 힘이 그렇게 센지 손목에 손자국이 다 남았다.

 “아이가 죽었다. 자두도 열리고 꽃도 핀 그 산속에서 여섯 난 아이가 혼자서만.”
 

 그 소식이 소문처럼 차츰차츰 커지는 것을 이성태는 곁에서 목도했다. 흑발 노인처럼 이성태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으나 오고가는 주민들이 하는 얘기를 이성태는 들었다. 그러는 사이 이성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성태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그 태도는 정중한 구석이 없이 따지듯 했으므로 이성태는 질책 받는다는 느낌을 면치 못했다.

 “정말 이상한 걸 보지 못했습니까.”

 전에 봤던 경찰보다 연배가 있어 뵈는 형사가 찾아와서 물었다.

 “꼭 특별한 게 아니더라도 그 왜 있잖습니까, 이상한 낌새? 같은 거.”

 사소한 거라도 좋다며 정말 하나도 없었느냐고 하나에 힘을 주어 말하던 형사가 대답을 채근했다. 하지만 그간 별다를 것 없는 일과를 지루하게 견뎌냈을 뿐인 이성태는 아무런 기미도 알아채지 못했다. 지난한 나날 속에 전조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은 입주자대표가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날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런 것도? 아니 웃기잖아. 사람이 많이 다닐 시간도 아닌데 아무것도 못 봤다는 게.”

 이성태가 뭐라 둘러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입주자대표가 곁눈질하며 이성태의 등 뒤에 단검을 찔러 넣듯 귓전에 대고 말을 꽂았다.

 “아저씨 일 안 해요?”

 “……

 “아니 뭐 아저씨 일하는 거야 내 소관이 아니지만, 아시죠? 이번에.”

 입주자대표가 말하는 이번이라는 것은 재계약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이성태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대로 일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미처 신경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물음에 답하기 곤란할 때마다 이성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전부 다, 제 불찰입니다…… 그러면 이성태를 찾아온 사람들도 더 이상 독촉 않았고 혀를 쩌쩌 차며 자리를 뜨기 부지기수였다. 그럼 곧 다시 관계는 원만해진다. 하지만 이성태는 한 번도 이런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만 한 자리에 올라본 적 없고 그만큼 죄지으며 살지도 않았다. 봉사하는 삶을 살진 않았지만 남에게 빚지는 일 없이 양심을 다해 살았다. 지금은 이렇게 고개를 조아리지만…… 난 너네랑 다르게 살았단 말이다. 그렇지만 이성태는 똑똑히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었던 것들. 이를테면 특별하거나 수상하진 않지만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그 왜, 이상한 낌새? 같은 것을.

 실종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성태는 조경수목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단지 내 화단을 돌아보았다. 오래 묵은 측백나무가 잎을 길게 늘어뜨려 일조권을 방해했다. 그러고 보니, 하고 이성태는 생각했다. 이성태가 이 아파트로 오고서 마지막으로 조경을 정리한 지도 벌써 오래였다. 화단은 화단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잡초가 우거져서 차라리 텃밭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이름 모를 넙데데한 잎사귀로 뒤덮여 너절한 건 둘째 치고 심어놓은 관목엔 오랫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이파리가 지나치게 무성했다. 그때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비좁은 틈새의 수풀 속에서 담배연기가 남자여자 웃음소리와 뒤섞여 슬몃슬몃 피어오르는 것을 이성태가 보았다. 그곳엔 LPG 가스통을 두었기 때문에 절대금연인 구역이었다. 이성태가 덤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이성태 쪽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뭣들 하니?”

 이성태가 따져 묻는데도 아이들은 꿈쩍 않고 심드렁하게 이편을 바라볼 뿐 별다른 반응을 않았다. 그런 탓에 이성태가 부러 위압적으로 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린노무 자슥들이…… 당장 안 꺼!”

 잠자코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느긋하게 담뱃재를 털 듯 꼰머충 부들.” 하고 한마디를 툭 놓았다. 일대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사레까지 들려가며 웃는 아이도 있었다. 버럭 고함을 내지른 이성태의 울대에 울컥 피가 올랐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아이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제각기 다르지만 어딘지 비슷한 태가 나는 낯빛이었다. 어린 티가 나지만 군데군데 어른의 것을 닮아 징그러운 구석이 있는 그 나이 또래 특유의 기색. 그중 낯익은 얼굴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 아이도 이성태를 알아봤는지 표정이 미묘했다.

 “그만 가자.”

 웃는 것을 멈추고 가장 먼저 자리를 턴 것 역시 그 아이였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도 옆에서 서두르는 것을 보고 하나둘 담뱃불을 짓이겼다. 카악, . 가래를 뱉으며 껄렁껄렁 지나치는 아이들을 이성태는 그냥 두었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가 진창이었지만 이성태는 상관 않고 무른 흙을 밟고서 아이들이 두고 간 꽁초를 다시금 톺아보며 곰곰 곱씹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였지? 맙소사. 이성태는 그 아이를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며칠 전 김윤식의 장례식장에서였다.
 

 김윤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영 존재감이 없던 사람으로 요약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보면 항상 어딘가에 속했던 사람. 간만에 사진첩을 펼쳐보면 누군지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어쨌든 무리 중 꼭 끼어있던 친구. 이성태가 아내의 짐을 꾸리느라 사진첩을 들췄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 어라, 얘가 내 결혼식에도 왔었나?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 짐을 전해주고 나면 그걸로 이성태의 삼십팔 년간 결혼생활도 막을 내린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성태의 아내, 한경원은 스물둘에 이성태에게 시집을 왔다. 간소하게 식만 올리고 신혼여행도 없이 보자기 대여섯 개 정도의 살림만으로 가정을 꾸렸다. 생활이 나아지면 같이 배를 타고 육지 밖으로 나가자고, 이성태가 한경원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는 않았다. 둘째아이까지 시집가는 것을 보고 한경원이 갖고 왔던 짐보다 못한 짐으로 집을 떠나게 되면서 이성태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속고 살았다. 입때껏 속고 살았어.

 이성태가 신혼시절의 사진첩을 펼쳐보며 그런 생각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무튼 이성태가 기억하기로 김윤식이란,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었고 그렇게 있으나 없으나한 친구였다. 동창회가 있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동창회가 시작되고 어느 틈엔가 끼어서 같이 술을 마셨는데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술집을 나가더니 그 길로 마지막이 돼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동창들은 김윤식의 얘기를 나누며 좋다고 술을 마셨다.

 “역시 어린 부인이 좋나.”

 “어리다고 다 좋나.”

 “그건 모르지.”

 “모르는 거지.”

 근데 이렇게 집에 일찍 돌아갈 정도면…… 동창들은 입술을 달싹이며 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나마나겠지.”

 김윤식의 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동창들은 마흔을 넘겨 제 조카뻘과 결혼한 김윤식의 얘기를 종종 술상 위에 올렸다. 그것은 대체로 경멸과 혐오의 성격을 띠었으나 그 속엔 알게 모르게 시샘이 섞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이성태가 대화 주제를 살짝 비틀었다.

 “그래서, 제수씨 고향이 어디라고?”

 김윤식은 삼대에 걸쳐,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대를 이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을 벗어난 적은 적어도 이성태가 알기로 몇 없었다. 역마살로 치면 그의 아내가 더 됐다. 김윤식의 처는 베트남에서 왔다. 동창회가 있고 난 다음 날, 그녀의 손을 보았을 때 이성태는 그 사실을 상기했다. 다소곳하게 배꼽 위에 겹쳐 얹은 손은 이성태의 것보다 그을어져 있었는데 이성태는 제 손과 그녀의 손을 번갈아보며 몹시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이성태의 손을 맞잡고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제법 똑바른 투로 말했을 때, 그 말투가 어딘지 굉장히 거슬린다는 느낌도 받았다.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진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이성태는 늘 생각해왔다. 그때 이성태는 친구들의 부축을 받고서 식장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이나 숨을 고른 뒤에야 다시 식장 안으로 들어섰었다. 식장 문간에서 까만 상복을 입은 채로 이성태와 눈을 맞췄던 아이를 이성태는 기억해냈다. 김윤식의 딸아이. 그러니까 아까 그 아이가…… 담배꽁초를 수거해 돌아가는 길에 그 장면을 수차례 되새김질했다. 맙소사. 어린 것이 겁도 없이. 이성태는 걷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파트 창유리와 자동차 보닛에 햇볕이 되비쳐 눈이 부셨다. 이 훤한 대낮에…… 사람 하나 없어져도 감쪽같은 세상에……!

 

 공사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원래 있던 얕은 담장을 허물고 사내 몇이 며칠간은 재단하는 것 같더니 철근이 세워지고 나서도 좀체 살이 붙지 않았다. 예정보다 늦춰지는 공사를 미뤄 짐작건대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럴 때 책 잡혀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이성태는 잘 알았다. 이성태는 실종사건이 있고부터 평소보다 많은 일을 도맡았는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르지 않았던 탓이다. 근변에서 아이가 사라질 동안 도대체 경비가 어디서 뭘 했냐는, 돈만 받고 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입주민들은 수시로 주고받았다. 이성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일의 양을 점차로 늘리는 등 계약조건에도 없는 일들을 돌보았다. 공사하며 생기는 민원처리도 단연 이성태의 몫이었다.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단지 둘레 한편에는 입주민의 편리를 위해 임의로 만들어둔 쪽문이 하나 나 있었는데 그 근처에 인부들이 휴게공간으로 사용하는 임시 그늘막이 있어 주변이 어수선했다. 이성태가 무시로 그곳에 들러 주의를 이르거나 감시했지만 인부들은 그러나마나 신경 쓰지 않고 저마다 할일을 챙겼다. 이성태는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인부 몇이 그늘에서 빠져나와 주차장 장애인 칸을 어슬렁거렸다. 나동 주민들이 고추나 잣 따위를 볕에 말리곤 하던 자리였다. 인부 한 명이 그 맡에 쭈그려 앉더니 꽈리고추를 가리켰다.

 “이거 독거미네.”

 어디보자, 하고 옆에 있던 다른 인부가 관심을 보이며 말곁을 뒀다.

 “이게 어째서 독거미야. 우리나라에 독거미가 웬 말이야.”

 “웬 말이기는. 그럼 이건 뭐야. 빨갛고 파란무늬.”

 “그러게 저건 또 뭐야.”

 “뭐긴 뭐야. 저게 바로 독이 있단 증거지.”

 인부들은 독이 있다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르며 주위에 있던 나뭇가지로 거미를 툭툭 건드렸다. 재빠르게 고추를 넘나들던 거미가 날쌘 몸놀림으로 나뭇가지에 올라타자 인부들이 어어어,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거기서 뭣들 하는 거냐며 빨간 조끼를 입은 사내가 야단치면서 웅성거림은 수그러들었다. 공사는 곧바로 재개되었다. 이성태는 그 광경을 무심히 살펴보았다. 그늘막에는 공사자재가 아무렇게나 늘여놓아져 있었고 그 곁으로 커피믹스와 종이컵, 사발면용기가 멋대로 쌓여있었다. 먼 데서부터 전기를 끌어와 물을 끓여 그것들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은 전부 곰팡내가 났다. 그들의 근처에서 그러고 가만히 서 있는 자체로 인부들에게나 입주민들에게나 일종의 전언이 된다는 것을 이성태가 모르지 않았다.

 젊은 여자는 여전했다. 매주 이틀, 평일 오후에 아파트를 들러 전단지를 붙였다. 전단에 표기된 문구만 조금 달라졌을 뿐 아이의 사진은 그대로였다. 멀리서 찍은 듯한 사진을 조잡하게 확대해 화소가 점점이 찍힌 여섯 살배기의 웃는 얼굴. 몇 해 몇 월 며칠 몇 시 경. 아이가 사라진 시각이 분명하게 표기되었다. 그건 이성태의 근무시간이기도 했다. 이성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까지 힐난할 것 있나. 당신들은 뭐가 그리 떳떳하다고. 이성태는 젊은 여자가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누가 볼 새라 황급히 전단지를 떼어냈다. 그건 경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공연히 일을 크게 만들어 좋을 게 없다는 게 이성태의 판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통로를 돌며 입구마다 붙여진 전단지를 떼어내고 있을 때 누군가 이성태의 등 뒤에 대고 물었다.

 “뭐해요?”

 젊은 여자였다.

 “아저씨였어요, 이걸 계속 떼어낸 게?”

 여자는 황망한 표정으로 이성태를 올려다보았다. 이성태는 최대한 그녀를 자극하지 않아야겠다는 심산으로 점잖게 웃어보였다.

 “그게……

 “아니 이걸 왜 떼어낸데?”

 젊은 여자가 울상이 돼서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가방에서 전단지를 꺼내 이성태가 떼어낸 자리에 새로 붙였다.

 “그거, 붙이시면 안 됩니다.”

 젊은 여자는 이성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흠칫하는 동향도 없이 전단지를 쥔 손으로 벽을 짚고 입으로 테이프를 지익 뜯었다. 보다 못한 이성태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어머니……

 “이거 왜 이러세요!”

 젊은 여자가 이성태의 손길을 홱 내치면서 가방에 든 전단지 뭉치가 엎질러졌다. 그녀가 노여운 얼굴로 이성태를 쳐다보았다. 소란이 꽤 컸는지 입주민 몇몇이 현관문을 열어보거나 차량을 멈춰 세웠다. 이성태가 주변을 의식해 멋쩍어하는 사이 여자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전단지를 갈무리했다. 이성태는 빨리 뭐라도 해명해야 된다는 강박에 괜히 성량을 높였다.

 “, 그러게 거기다 왜 그런 걸 붙입니까 붙이긴!”

 이성태는 아파트단지에서 이십 분 남짓한 거리에 살았다. 판상형 빌라와 단독주택이 늘어선 곳으로 그 간격이 나란하지 못하고 들쭉날쭉해서 사이를 가르는 골목이 많았다. 이성태는 몇 해째 수거되지 않는 불법 광고지나 임의로 쓰레기를 모아두는 전봇대로 골목을 구분하며 집을 찾았다. 점토벽돌에 붉은 유약을 바른 다세대주택 3층이 이성태가 사는 집이었다. 4층에 거주하는 집주인이 계단을 비추기 위해 난간에 달아놓은 전구로 층계를 오를 땐 얼마간 밝았지만 이성태가 사는 집은 전체적으로 칙칙했다. 제때 거둬들이지 않은 빨래로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옅었고 형광등을 밝혀도 조도가 낮았다. 두 칸짜리 방 중 한 칸은 오래 방치된 채로 문드러지다 가끔 이성태가 들르는 날에만 잠깐 불이 켜졌다가 금세 다시 꺼졌다. 그러길 수차례 반복하며 이성태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는 집이었다. 첫째아이가 모시고 살겠다고 했으나 이성태가 그러지 않았다. 짐이 되는 건 한경원으로 족했다. 그 집에서 둘째아이까지 시집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경원은 시름을 놓듯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여보…… 이상하게 나 여기가 쿡쿡 쑤시네.”

 이성태가 아직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때였다. 연말이라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이성태는 아프면 병원에 가보라고 얼김에 넘기듯 대충 대꾸하곤 집을 나섰다. 급히 나가느라 구겨 신은 신발을 현관문 앞에서 고쳐 신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등 뒤가 싸했다. 문이 제대로 닫혔는데도 그랬다. 이성태는 고개를 기웃하는가 싶더니 마저 신발 끈을 꽉 조이고 출근길에 올랐다. 한경원은 그 길로 몸져누웠다.

 “몸이 다 썩어가도록 그걸 참고…… 미련스럽게.”

 이성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퇴근길이었다. 설핏 그 아이를 보았다. 김윤식의 딸아이. 분명한 건 아니었다. 스치듯 본 옆모습이 마치 김윤식의 딸아이 같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은 김윤식의 집과 거리가 있었고 골목이 외졌으므로 이성태가 확실히 해두고 싶은 마음에서 뒤를 밟았다. 염려스러운 일이 있다면 신고할 작정이었다. 이성태가 그녀의 뒤를 따라 비교적 큰길가로 들어서면서 폐업 현수막이 걸린 상가와 공사가 일시 중단된 건물로 일대가 한적했다. 벽 사이를 타고 스산한 바람소리가 지나가기도 했다. 이곳이라면…… 이성태는 돌연 직감했다. 누구 하나 사라져도 모르겠다.

 김윤식의 딸아이는 잡힐 듯 말 듯 골목을 끼고 걸으며 외진 곳으로, 더 외진 곳으로 이동하더니 마침내는 모텔 건물로 들어갔다. 쇠락한 네온사인이 간신히 빛을 발하는, 옆 상가와 간격이 좁은데도 동떨어져있다는 인상을 주는 건물이었다. 거리와 조화롭지 못한 건축 양식 때문일 거라고 이성태는 직관했다. 콘크리트 외벽에 대충 석고를 덧대 조악하나마 고딕 건축물을 흉내 낸 여관. 이성태는 그 앞에 서서 잠깐 동안 망설였다. 만약에 아니라면? 내가 잘못 보았다면? 하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김윤식의 딸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면서 이성태는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딸깡, 종소리를 듣고 프런트에 앉아있던 주인이 알은체했다.

 “어서 오세요.”

 “방금…… 여자아이 하나 들어왔지요.”

 “, 예쁘장한 아가씨?”

 “거기가 몇 호실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머, 손님이 누군 줄 알고.”

 모텔주인이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이성태를 위아래 훑었다. 이성태는 당황한 듯 머뭇거리더니 곧 단정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제가, 그 아이 아버지입니다.”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모텔주인은 그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나 혼자 덤터긴데? 하며 스스로 문답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내 알았어요, 알았어, 하면서 모텔주인이 호실을 일러주었다. 그러나 막상 객실 앞에 선 이성태는 막막했다. 문을 두들겨도 아무런 기척이 없던 탓이다. 이성태는 프런트로 돌아가 호실을 재차 확인할까 싶다가 질끈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김윤식의 딸아이 얼굴은 이성태의 머릿속에 뚜렷했다. 기특하게도 주눅 드는 모습 없이 제 엄마의 어깨를 도닥여주던 아이. 속이 단단한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는 문간에서 몰래 눈가를 훔치던 아이. 이성태는 식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가 그 아이와 눈을 마주쳤음에도 어색하게나마 위로해주지 못한 것이 줄곧 마음 쓰였다. 이번엔 꼭…… 이성태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다.

 “얘야…….”

 객실은 어두컴컴했다. 이성태가 불을 켜려고 벽면을 더듬다가 희미한 어둠 속에서 이불이 꿈틀대는 걸 보았다. 이성태는 저것이 김윤식의 딸아이인지를 확인해야 했으므로 눈을 가늘게 뜨고 두 팔을 휘젓는 모양새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침대를 짚은 이성태의 손끝에 살갗이 닿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 맞지?”

 이성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불 속의 여자는 천천히 이불을 걷었다. 그러나 윤곽이 불분명해 이성태는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여자는 있는 힘껏 그대로 이성태를 끌어당겼는데 이성태의 목 뒤로 여자의 팔꿈치가 닿으면서 왈칵 부드러운 향기가 끼쳤다.

 “추워요 아저씨, 들어오세요.”

 몹시 여리고 고운 피부였다. 이성태는 당혹스러웠다. 살결 위로 미끄러지는 양손을 어쩌지 못한 채로 이제 그만 됐다고 내빼려는데 그럴수록 여자는 더욱 힘을 주고 이성태의 품안에 달려들었다. “저도 모르게 신음이 삐져나왔다. 여자의 숨결이 가까이 닿으면서 이성태의 호흡도 덩달아 가빠졌다. 김윤식의 딸아이일 리 없다고, 불현듯 이성태는 생각했다. 그럴 리 없다. 세상이 아무리 요지경이라지만 이럴 순 없는 거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 찰나에 환한 불빛이 모텔 방을 급습했다. 순식간이었다. 내부 조명이 켜지면서 서너 명의 남자들이 몰려와 이성태를 덮쳤다. 그들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이성태를 발로 짓이기며 옷가지를 빼앗았다. 그만하라고 발버둥칠수록 더 세게 가격했다. 이성태는 무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웅크리고 살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어린 애랑 이러고 싶냐?”

 개중에 하나가 이성태의 고개를 뒤로 젖혔다. 주변에서 키득대는 소리와 함께 욕지거리가 날라들었다.

 “가족들은 이러고 있는 거 알고?”

 이성태는 어깨를 덜덜 떨었다. 곁에 있던 남자들이 흩뜨려진 이성태의 겉옷을 뒤졌다. 낡은 지갑 속에서 이성태의 신분증을 꺼낸 남자가 민증 사진과 이성태의 얼굴을 한 화면에 담으며 촬영했다. 이성태는 어쩔 줄을 몰라 눈치를 보듯 눈알을 살살 굴렸다. 그 건너편에서, 침대에 걸터앉은 여자가 뒤돌아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는 게 보였다. 불그스름한 옆모습의 여자, 그녀는 김윤식의 딸아이가 맞았다.

 모텔 건물 앞엔 그늘이 드리워 제법 쌀쌀했다. 남자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담뱃불을 담벼락에 비벼 껐다. 이성태는 건물 옥상에 올라 김윤식의 딸아이와 둘만 섰다.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아저씨는, 하고 이성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딸아이는 이성태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을 발로 툭툭 찼다. 어떠한 말도 변명처럼 들릴 거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이성태가 낱말을 이것저것 고르는 것을 딸아이가 무심히 기다렸다.

 “……너도 네 아버지를 생각해야지.”

 이번엔 딸아이가 이성태의 두 눈을 똑바로 맞췄다. 이성태는 아차 싶어 얼른 시선을 돌렸다.

 “네 몸도 소중히 잘 간수하고……

 이성태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김윤식의 딸아이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일순간 이성태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성태는 그 웃음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김윤식의 장례식장에서 그도 머금은 적 있던 비소였다. 문상객들이 너도나도 거들었던 목소리.

 “그래도 딸애는 동남아 안 같네.”

 그때의 기억까지 되살아나자 이성태는 이 광경을 멀리서 조망하듯 이 모든 대화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얼마나 이상한 장면이란 말인가. 죽은 동창의 딸아이와 모텔 앞에서, 그것도 벌주대낮에. , , 구두 앞코로 땅을 찍는 딸아이의 모습과 깡, , 철근을 내려찍는 공사장 인부 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했다.

 방음을 겸한 외벽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고 나서 이성태의 일손은 의외로 많이 줄었다. 출입이 잦아들면서 단지 내에 버려진 쓰레기의 양도 줄었고 무엇보다 둘러댈 데가 명확해서 편했다. 입주민들이, 저희 입장도 참, 하면서 이성태는 출처를 분명하게 하며 잡상인이니 인근주민이니 하는 사람들을 거절했다. 그러면 그들도 쉽게 수긍했고 죄책감도 덜했다. 이런 게 사명감인가, 싶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그런 날들 중에 일전의 젊은 여자가 또 한 번 찾아왔다.

 가을 공기가 선선한 저녁이었다. 이번엔 시어머니가 사라졌다며 여자가 CCTV를 좀 볼 수 있을까요, 했다. 이성태는 이게 아무나 와서 보여 달라고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그때와 달리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외간사람이 들어오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아니, CCTV만 보면 되는데.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그거.”

 “죄송합니다. 돌아가시죠.”

 “CCTV만 보자니까.”

 “그만하고 돌아가시죠.”

 끝 모를 밀고 당기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이성태가 막아서면 그녀가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식이었다. 이성태가 밀리지 않고 완강하게 막아서자 끝내 그녀는 체념한 듯 돌아섰다. 그러다 문득 돌아서더니 이성태를 또렷이 쏘아보며 물었다.

 “근데요 아저씨, 정말 못 봤어요? 정말 못 봤냐구.”

 “못 봤습니다.”

 “그럼 그때 뭐했어요?”

 뭘 하다니, 이성태는 말문이 턱 막혔다. 하지만 딱히 뭐라 속 시원히 대답할 게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자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떠나고, 그녀가 점차로 작아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성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들 무례한 거야…… 왜들 이렇게…… 나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함부로 속단하고들…… 이렇게 계도하려 들고, ? 내가 지들과 다를 게 뭐라고…… 이성태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중을 오므렸다. 그녀의 아이가 모진 일을 당한 건 분명 안타까웠지만 이성태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원망하든, 입주자대표가 타박하든, 형사가 질책하든 그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찾아와 괴롭혔지…… 그때 내가 뭘 했느냐고? 하지만 이성태는 그와 같은 질문을 그전번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뭘 하셨어요? 이 지경이 되도록…….”

 담당의가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나직이 물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넋 놓고 있던 아내를 대신해 이성태는 뭐라도 대답해야만 할 것 같은 심정에 사로잡혔다. 이성태는 아내의 손등 위로 제 손을 덮으면서 안심시키듯 살포시 다독이며 말했다.

 “집사람이…… 원래 좀, 둔감합니다.”

 그때 한경원의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어떤 표정이었을는지 짐작이 갔다. 한경원이 이성태의 손아귀에서 슬그머니 손목을 비틀어 뺐던 것이다. 이성태는 그때 놓친 게 그 손뿐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손뿐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럼 무엇을 더 놓쳤나. 이성태는 그것에 골똘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 한경원이 손목을 비틀어 빼던 때의 감각까지 선연히 되살아나 잊으려 노력했던 순간들이 불티가 튀듯 한꺼번에 터져나왔는데 그 기억 중엔 이런 장면도 있었다. 희붐한 암면이 서서히 눈에 익어갈 즈음이었다. 이성태는 엎어지듯 여자의 귀 밑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가 힘을 줘 이성태를 끌어당기기도 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 몸 아래 깔린 여자의 얼굴이 선명해지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성태는 무엇이 두려워 여자의 얼굴을 피했나. 만일 영영 불이 켜지지 않았더라면……

 이성태는 황급히 잡념을 거둬들였다. 젊은 여자가 딴 길로 새진 않는지 단지 외벽을 빙 둘러 사라지는 것을 CCTV로 가만 지켜보았다. 화면 속엔 여러 개의 직사각형이 균일하게 나뉘어 아파트단지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그중엔 놀이터를 담고 있는 화면도 있었다. 일전에 그곳에서 아이가 사라진 후 전지작업을 요청한다는 것을 이성태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새 화면을 가렸던 푸른 잎사귀는 어느덧 숨이 죽어 빛이 바랬다. 그때 바람이 불었는지 어쨌는지 가지 끝에서 나뭇잎이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을 이성태는 놓치지 않았다. 놀이터의 모습이 온전하게 화면에 들이찼다. 조막만 한 화면 속에서, 아무도 타지 않은 그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성태는 그것을 오래간 지켜보며 뭔가 울고 싶기도 했고 성을 내고 싶기도 했다. 이성태는 얼굴을 찌그러뜨려 보았다. 기묘한 얼굴이 되었다. 전에 없던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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