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다
  • 이연주 준기자, 조은결 준기자
  • 승인 2019.10.14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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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답게 살기’, ‘남들과 좀 다르면 어때?’, 이는 소신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거리낌 없는 1534세대를 상징하는 말이다. 밥 먹듯이 소신을 표현하는 1534세대로 인해 ‘소피커’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에 1534세대의 소피커적 경향이 생겨난 배경과 문화적인 흐름을 알아봤다.


끊임없이 표현하는 당신, 누구인가요?


 지난 7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실시한 ‘2019년 1534세대 라이프 스타일 및 가치관 조사’(이하 해당 조사)에 따르면 만 15~34세 1,000명 중 81.4%(814명)가 소신을 위해 행동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소피커’를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다. 이에 1534세대에게 ‘소피커’적 성향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소피커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알아봤다.

 소피커가 탄생하기까지=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제시한 트렌드 키워드인 ‘소피커’[所(바 소) / 小(작을 소) + Speaker(말하는 사람)]란 자신의 소신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소피커’가 생기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소신을 밝히는 것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돼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 독재정권으로 인해 국민들은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도록 침묵을 강요당했다. 국가로부터 폭압을 당하던 국민들은 개인의 발언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여겼다. 강태규 문화평론가는 “당시에 개인은 사회 속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였고 표현에 있어서도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 측에 따르면, 과거에는 소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였으나, 지난 2016년을 계기로 사회문제와 관련한 개인의 의견표출이 중요해졌다. 지난 2016년, 국정 개입과 관련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촉발됨에 따라 촛불 집회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개개인의 목소리가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당시 견고할 것만 같았던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일은 소신이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믿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드러내고, 표현하고=1534세대를 중심으로 소피커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소신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선호와 관련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에서 배우 고준은 “결혼식이 허례 의식처럼 느껴져서 결혼식은 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며 결혼에 대한 주류 의견과는 다른 소신 발언을 했다. 또한 SNS 등을 통해 개인의 식습관과 관련한 소신도 밝히고 있다. 최근 SNS에서 ‘오이를 싫어하는 모임’(이하 오싫모)이 생겨 오이를 피할 수 있는 노하우가 공유되기도 한다. 이에 이재흔 책임연구원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비교적 가벼운 이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등 소신이 개인화된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각은?=기성세대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이 금기시됐던 시대를 살았지만 현세대인 1534세대는 그들과 달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특성을 띤다. 이에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등과 같은 도서들이 1534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사회가 정한 보편적인 기준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삶을 결정하는 가치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편 본지에서 우리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상 속에서 타인이 소신을 밝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고자 앙케트를 실시했다. ‘일상 속에서 타인이 소신을 밝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답한 학생 203명 중 82.8%(168명)가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17.2%(35명)가 ‘부정적’이라고 답하는 등 대다수가 타인의 소신 있는 삶을 존중하고 있다. 이처럼 지금 1534세대는 자연스럽게 소신을 표현하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당당하게 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소피커들의 일상은?


 ‘소피커들’은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낸다. 이에 1534세대 소피커들의 일상을 엿보고, 그들의 영향력에 대해 살펴봤다.

 숨소밍, 숨 쉬듯 소신을 말하다=소피커들은 환경 보호, 취향 존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한다. 환경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피커들은 환경 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자 텀블러, 실리콘 빨대 사용 등을 통해 소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지난해 9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올라온 실리콘 빨대가 목표 금액이었던 50만 원을 훨씬 넘은 약 3천만 원의 금액이 모여 펀딩에 성공하기도 했다. 또한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레인트리 캠페인’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자투리 방수 원단의 우산 커버를  서점, 박물관 등에 설치하기도 했다.

네파의 '레인트리 캠페인'
네파의 '레인트리 캠페인'

 또한 소피커들은 자신의 취향을 당당히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 1월, 숭실대 총학생회는 술자리로 인해 교내 행사 참석에 부담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술강권금지팔찌’를 마련했다. 해당 팔찌는 노란색, 분홍색, 검은색으로 구분되며, 노란색은 ‘마시지 않겠다’, 분홍색은 ‘팔찌 색이 될 때까지 마시겠다’, 검은색은 ‘끝까지 마시겠다’라는 의사를 대신한다. 이처럼 착용한 팔찌의 색상에 따라 술자리에서 자신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 소속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최근 연예인 설리는 JTBC 예능 ‘악플의 밤’에서 “브래지어는 액세서리”라고 말하는 등, 일부 소피커들은 여성의 의무사항으로 여겨지던 브래지어 착용으로부터 자유를 주장했다. 이에 국내 헬스앤뷰티 스토어인 ‘올리브영’에서 니플 패치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95%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기도 했다. 더불어 ‘야망크리에이터’라는 닉네임의 20대 여성은 탈브라 전용 의류를 제작하기 위해 ‘텀블벅’ 펀딩을 시작했고, 목표 금액인 5백만 원의 약 3배인 1천 7백만 원의 후원금이 모이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작은 소신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다=소피커들은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해 이를 해결하기도 하며,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 7월, 온라인 패션스토어 ‘무신사’에서는 페이크 삭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속건성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가 담긴 카드 뉴스를 게시했다. 하지만 이를 본 소피커들은 해당 광고 문구가 ‘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며, 해당 업체가 엄중한 역사 사건을 폄하하고 희화화한 것에 분노했다. 이에 업체 측은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사과 및 후원금 전달, 담당자 징계, 강사 초빙을 통한 사내 역사교육 실시 등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대처했다.

무신사의 페이크 삭스 광고 문구
무신사의 페이크 삭스 광고 문구

 

 지난 9월, 일본 브랜드 DHC의 자회사 DHC TV 대표는 한국의 불매운동에 대해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라고 얘기해 혐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해당 브랜드의 광고모델인 배우 정유미는 초상권 사용 철회, 모델 활동 중단을 요청하고 남은 6개월에 대한 광고 계약금을 반환할 것을 결정했다. 배우 정유미 소속사 측은 “DHC 본사의 망언에 심각성을 느껴 해당 조치를 취했으며 해당 기업과 재계약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에 그의 강단 있는 대처에 많은 사람이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이재흔 연구원은 “소신을 솔직하게 전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경혁 문화평론가는 “이러한 소피커들의 활동은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도록 하고, 문제에 대한 더 나은 해결방안을 찾는 데 기여한다”고 전했다.

 소신vs소신, 성찰이 필요해=소신 표현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소신과 소신이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이에 일부 소피커들은 소신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터링’ 되지 않은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로 인해 세상에 자극적인 말과 콘텐츠들이 난무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7월, SNS에서 일본 여행을 간 계정을 비난하는 ‘일본 여행 가는 매국노 팔로우하는 계정’이 개설돼 논란이 됐다. 해당 계정의 주인은 ‘내가 팔로우하는 게 쪽팔리면 일본을 가지 말자’라는 소개 글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간 여행객의 게시글을 직접 캡처해 비판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계정의 개설 목적에 공감하며 일본 여행을 간 계정을 제보하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노노재팬 운동 참여는 개인의 ‘선택’일 뿐 ‘의무’가 아니라며, 제보하면서까지 그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행위는 부적절한 소신임을 지적했다. 이에 이경혁 문화평론가는 “일부 소피커들은 자기 소신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부적절한 수단과 과격한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며 “소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일본 여행객을 비난하는 SNS 계정
일본 여행객을 비난하는 SNS 계정

 *크라우드 펀딩: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한 용어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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