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천마문화상 시부문 가작
제38회 천마문화상 시부문 가작
  • 편집국
  • 승인 2007.06.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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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의 차
                                     하 선 영

빡빡한 도로 속에
나무 하나가 실리어간다.
뿌리 채로 그 자유롭던 가지들을 모아 묶어
흔들리면서 도로를 달리고 있다.

어디가? 하고
작게 물었더니,
난 죽을지도 몰라요.
숨죽이듯 더 작게 내뱉고 끌리어간다.

나는 동화를 꿈꾸었는데
나무는 진짜였다.
그에겐 참 삶 뿐이었을 시간이,
검은 고무에 묶인 그 뿌리에서부터 시작되어
마른 흙이 마지막 삶을 떨어뜨리고 있다.

◆ 수상소감

"뜨끈뜨끈한 국밥같은 시를 쓰고 싶다”
제가 좋아하는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 중에서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제가 시를 쓰면서 늘 다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시를 써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갑이나 모자처럼 겉을 따뜻이 해주는 그런 것이기 보다는, 국밥처럼 사람의 속을 뜨끈뜨끈하게 데워주는 그런 것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시가 아직은 그리 뜨끈뜨끈한 그 어떤 것이지 못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쓴 시를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천마문화상에 응모하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덜컥 떨어져버렸으니 제 기분은 조금 씁쓸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올해에 또 천마문화상에 시를 응모한 것은 저 스스로의 대학 4년을 마무리 짓는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막연히 생각으로만 ‘4학년’하고 여겨왔는데 막상 4학년이 되고나니, 4년 동안 대학이라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내 옷자락엔 그 어떤 자국도 남아있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천마문화상에 시를 응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알아보고자했던 것이 운 좋게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서 솔직히 저는 지금 졸업작품전을 잘 치러낸 기분입니다.
저에게 시를 잘 썼다고 주시는 상이기보다는 더 노력하라는 의미에서 주시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며, 뜨끈뜨끈한 국밥 같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운 향기보다는 살아가는 사람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많이 부족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이동순
(시인, 국문과교수)
이번 천마문화상 투고 작품 중 본심에 오른 작품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첫 느낌은 대체로 너무 어둡고 비극적 현실의 주체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떠나간 계절에 대한 허탈감을 다룬 「불면증」, 새로운 세기의 삶에서도 여전히 절망감 속에 허덕이는 심정을 나타낸 「21세기의 계단에서, 새벽」, 여성성의 존재성을 부각시키면서 지층의 중량감에 비유한 「지층같은 여자」, 시인을 꿈꾸던 청년이 어느 날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는 슬픔을 다룬「제목없는 시」, 전반적으로 현실의 어둠과 부정적 측면을 다룬 「단풍」, 답답한 현실 속에서 아무 대책 없이 살아가는 군상들을 다룬 「그리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도 정서적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심정을 다룬 「엄마의 화단에서」등이 하나같이 어둡고 우울한 현실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가운데 「장의차」가 유난히 돋보인다. 무리 없는 시상의 전개, 주변사물과의 영적인 대화, 그리고 대상에 대한 시인적 감성과 따뜻한 인식이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너무 짧다. 좀 더 많은 분량으로 자신의 솜씨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응모자 모두의 정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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