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독도, 그곳은 작고도 위대한 곳
[특집] 독도, 그곳은 작고도 위대한 곳
  • 김채은 기자, 김달호 기자, 김민석 준기자
  • 승인 2019.10.14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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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있어 독도는 특별한 순간에만 사람들에게 다가올 뿐 평상시에는 뜻깊은 존재로 인식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린 그곳을 결코 평범한 곳으로 이해할 수만은 없다. 역사, 지리, 국제법 등과 모두 얽힌 우리의 땅 독도를 알아본다.

그대가 걸어온 위대한 길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87km를 가면 도달하는 작은 바위섬이 있다. 그곳은 동도와 서도로 불리는 바위섬 2개와 그보다 작은 암초 같은 바위 수십 개가 있는 작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크기와 다르게 많은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이곳을 거주지로 두고 싶어 하는 명예 주민이 약 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우리는 독도에 대해 언제나 말하고 듣는 등 이 땅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독도의 경관
독도의 경관

 독도는 우리땅!=「삼국사기」에 따르면 512년 우산국이 신라의 영토로 복속됐다. 이때의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등지로 약 100리(약 40km)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 국가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기록이 「삼국사기」에 의한 첫 기록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론도 있다. 「삼국사기」에 등장한 ‘우산국’은 독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울릉도와 독도 일대를 합쳐서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실제로 독도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기록은 그보다 훨씬 뒤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송휘영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정확히 말하면 독도는 「신찬팔도지리지」(1432년)에 기록되면서 처음 우리나라 땅이 됐으며, 해당 자료가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자료로는 「세종실록지리지」가 최초다”라고 말했다.

 이후 독도는 17세기 중반 일본과의 갈등에 관한 기록에서 다시 등장한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1693년, 안용복을 포함한 조선의 어부들이 일본 쓰시마로 납치됐다. 당시 울릉도와 독도 일대로 조업을 나간 이들을 일본이 납치하면서 사건은 발생했다. 이에 1695년 일본 에도막부에 의해 작성된 ‘돗토리번 답변서’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님을 발표하면서 해당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후 일본은 ‘다케시마 도해 금지령’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닌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했다. 또한 1877년에는 당시 일본 최고 행정기구였던 태정관이 “두 섬(울릉도와 독도)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시하라”는 내용의 ‘태정관 지령’을 공표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확고히 했다.

 전쟁의 폭풍에 휩쓸리다=그러다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은 의도적으로 독도를 향한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 발표한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따라 울릉도와 독도 지역을 울도군으로 개칭하고, 이들이 대한제국 영토임을 밝혔다. 하지만 1904년 시작된 러일전쟁으로 주요 전쟁터인 동해에 있는 독도의 지리적 중요성이 높아지자 일본은 독도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에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발표해 독도의 명칭을 ‘다케시마’로 정하고 오키섬 관할로 뒀다. 하지만 당시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인해 이러한 부당 행위에 대해 반발하지 못했다. 

 광복 이후, 독도는 우리나라 땅으로 반환됐다.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각서 제677호’에 따라 일본의 통치 행정범위에서 독도가 제외됐다. 또한 같은 해 ‘연합국최고사령관각서 제1044호’에는 일본의 어업에 관한 범위에 있어 독도 주변 12해리(22.224km) 접근을 금지했다. 더불어 1951년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 사이의 강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2조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와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기술돼 있다.

 독도를 지키자, 각계의 노력=정부와 지자체는 독도에 대해 각종 홍보 활동과 군사적인 보호 활동을 취해오고 있다. 현재 독도에는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의 ‘독도경비대’가 상주해 있다. 또한 지난 8월에는 ‘독도방어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외교부와 경상북도는 각각 외교부 독도 사이버 독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각종 독도 관련 정보를 배부하고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알리고 있다. 더불어 외교부는 현재 12개의 언어로 홈페이지를 번역해 외국인이 쉽게 독도에 관한 정보를 얻도록 했다.

 한편 우리 대학교는 독도연구소를 만들어 독도와 관련된 연구와 홍보를 목적으로 한 학술대회, 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경상북도과 함께 ‘독도시민강좌’를 개최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독도를 알렸으며, 이외에도 독도 우표 발행 독도 교재 발간 독도 홍보 리플렛 배부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송휘영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은 “독도연구소는 일본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에 대해 경상북도가 대응하기 위해서 설립됐다”고 말했다. 이외 민간에서도 독도를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독도문방구는 독도와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고 이에 대한 수익을 기부했었다. 이에 김민정 독도문방구 대표이사는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을 통해 일반 시민이 독도를 친근하고 아름다운 땅으로 일상생활 속에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독도 바로 알아보기

 본지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11일간 학내 구성원들이 독도를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독도 상식 퀴즈 7문제를 냈다. 이에 124명의 응답자가 제출한 답변 중 오답률이 높은 문제의 정답과 해설을 알려주고자 한다.

 512년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이래로 독도에는 많은 이름이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삼봉도’라는 이름으로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시대 기록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후 18세기부터는 ‘물개가 많은 섬’이라는 뜻으로 ‘가지도’라고 불렸다. 마지막으로 1900년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서 독도를 석도로 규정해 우리의 영토로 공식화했다. 선택지 중 오이도는 현재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서해안의 섬이다.

 지난 2000년, ‘문화관광부 고시 제2000-8호’를 통해 기존의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을 변경했다. 이에 독도의 표기는 기존 ‘Tokdo’에서 ‘Dokdo’로 변경됐다. 또한 ‘Dokdo’에는 섬을 의미하는 접미어 ‘do’가 이미 포함되어 있으므로 ‘Dokdo Island’ 형태의 표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 40호’로 독도를 강제로 오키 섬 관할로 편입시켰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면서 ‘연합국최고사령관각서 제677호’를 통해 독도가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제외됐다. 또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일본의 공식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돗토리번 답변서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인정하는 등 여러 일본 공식 기록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거기, 궁금한 그곳

 화산섬 독도=독도는 해저 약 2,000m에서 해저화산의 폭발과 용암분출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약 460만 년~ 250만 년 전에 형성된 화산섬이다. 수면 위 독도의 섬들은 그 높이가 대략 160m이고, 섬들을 합친 폭이 약 1,000m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과는 달리 독도의 바다 속 모습은 매우 거대하다. 독도의 수면 아래 200m까지는 평평한 *평정해산의 상부 대지로 전체 넓이는 여의도의 8배 정도이다. 현재 독도는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해양성 기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이 약 12.4℃이다. 또한 독도는 연중 안개가 잦고 흐린 날이 160일 이상이며 강수일수는 150일 정도이다.

한편 비가 내리면 흙이 흘러내리니 토양은 항상 건조하고 소금기 머금은 해풍이 강하게 불어 식물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식물 약 50~60종이 독도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그중 민들레, 질경이, 구절초와 같이 친숙한 식물도 있지만 갯까치수염, 도깨비고비, 박주가리와 같이 재밌는 이름의 식물도 있다.

 독도에 살아요=독도에서 발견된 새들은 괭이갈매기, 쇠가마우지, 바다제비, 슴새 등이 있으며 그 종류는 120종이 넘는다. 특히 이른 봄이 되면 괭이갈매기의 번식기가 시작되면서 괭이갈매기가 독도 하늘을 가득 메우는 진경을 볼 수 있다. 독도에는 새들도 많지만 다양한 곤충들도 있다. 그 종은 50여 종에 달하며 그중 메뚜기, 노린재, 풀잠자리, 딱정벌레 등이 있다. 그런 한편 독도에는 양서류와 파충류가 발견된 기록은 없다. 또한 섬이기에 육상 포유류도 없다. 현재 독도에 사는 포유류는 독도 경비대가 육지에서 데리고 와서 기르고 있는 삽살개가 유일하다. 

 *평정해산: 수심이 깊은 바다 속에 있는 꼭대기가 평평한 산 모양의 지형

독도문방구 대표님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저는 독도문방구 김민정 대표입니다. 울릉도에서 자랐지만, 처음부터 독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강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독도를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독도에 관해서 알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독도’라는 존재가 정치적 소재가 아닌 ‘우리의 땅’이고 ‘방문하고 싶은 관광지’로 기억할 수 있게 친근감이 가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학생들을 위한 제품인 독도 노트, 오징어 노트, 강치 노트와 같은 노트, 연필, 지우개, 에코백과 같은 문구류 중심으로 제작했어요. 그러다 차차 마그넷, 스노우볼, 의류 등 다양한 물품으로 확대해 나갔어요.

 독도문방구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는 강치가 특히 많이 그려져 있어요. 그 이유는 독도 강치가 멸종된 과정에 우리 민족이 수난당한 역사가 축약돼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가 힘이 없을 때, 강치가 일본으로부터 무분별하게 살육 당했어요. 그때 강치사냥을 독점적으로 허가받으려는 업자 ‘나카이’의 청원서를 이용해 1905년, 일본은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켰어요. 그래서 저는 제품 중에 아픈 역사를 간직한 ‘강치 인형’에 가장 애착이 가요. 인형을 제작하는 데 큰 비용이 들었지만, 어린이들이 매장을 찾아와서 “이게 강치야!”라고 하며 인형을 번쩍 집어 드는 모습을 볼 때면 보람이 느껴져요.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독도 관련 뉴스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온 국민이 하나돼 일본의 잘못된 주장에 대해 알아보고 독도를 방문해보는 ‘풀뿌리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길 바라요.

독도문방구 대표이사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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