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글을 쓴다는 것
[영봉] 글을 쓴다는 것
  • 김채은 편집국장
  • 승인 2019.10.1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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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특기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필자는 조금 생각해보고는 으레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막연히 대답했다. 학보사의 기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칼럼을 쓰려고 하면 어떤 것을 써야 할지 몰라 끙끙 앓곤 한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기보다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대학 사안에 대해 다루고 그에 대해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기자’로서 나는 글쓰기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내 생각이 담기지 않은 기사를 쓰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야 하는 칼럼을 쓸 때는 괜찮지가 않다. 칼럼은 내 생각을 글에 그대로 드러내야 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칼럼 주제를 정했을 때조차 그 주제에 대해 자신감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 있게 글 하나 써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는 때로 감동을 주고, 때로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22살의 나는 내가 쓴 글이 독자들에게 아무런 영감도 주지 못할 것 같았고, 때로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서 두려움에 움츠러들고 있었다. 사회적 이슈인 ‘조국 법무부 장관을 구속하라’는 집회에 대한 내 생각을 조리 있게 드러내고 싶었다. 인터넷만 켜도 실시간 검색어에 그와 관련한 키워드가 떠 있고 국민들은 이 사안을 두고 양측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그 갈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었다. 한 나라 안에서 생각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마음 아팠고, 이 시국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 생각을 글에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비단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가 아니더라도 내가 쓴 글이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특정 집단에 갈등을 야기할까 봐 걱정돼 숨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겁쟁이’가 되어갔고 그대로 내버려 뒀다. 하지만 칼럼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이 ‘겁쟁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계속 내가 쓰는 글에 자신감이 없는 것이 싫어서 어떻게 하면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을지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러다가 불과 얼마 전에 강원국 작가의 강연을 통해 내가 왜 그렇게 글쓰기를 어려워했는지 알게 됐다. 강원국 연사는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끔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쓰려고 하다 보니 부담을 갖게 되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며 “자주 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잘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 순간 허탈함이 느껴졌다. 고민하던 일이 당연스러운 사실로 해결이 됐기 때문이다. 강원국 연사는 지난 2017년에 개최된 ‘48회 천마지성강연회’ 연사자였다. 연사의 강연을 그때 들었다면 고민하던 것이 일찍 해결됐을 거라 생각하니 허무했다.

 평소에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않았기에, 내면을 글로 써내려고 하면 어려웠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쓰지 않은 근육은 퇴화하고 자주 쓰는 근육은 발달하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갑자기 글을 쓰려고 하면 정말 어렵다. 그러니 생각이 날 때마다 틈틈이 각자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멋진 글을 쓰려고 끙끙 앓기보다 힘을 빼고 허공을 흐르는 종이 비행기처럼 가볍게, 자유롭게 날씬하게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글도 좋지만, 시간이 지나 그 글을 읽었을 때 ‘나’를 만날 수 있는 글이라면 더없이 귀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는 11월 14일에 ‘50회 천마지성강연회’가 개최된다. 연사자로 김연수 작가가 온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강연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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