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상차림으로 바라본 우리 예(禮)
추석 상차림으로 바라본 우리 예(禮)
  • 이연주 준기자, 조은결 준기자, 김민석 준기자
  • 승인 2019.09.02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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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9월 13일은 민족 대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다. 신라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대표 명절로 자리 잡은 추석에는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낸다. 이에 본지에서는 추석 상차림의 본질과 제사상 차림을 쉽게 익히기 위해 만들어진 ‘습례국’에 대해 알아봤다.

제사상 차림의 본질, ‘정성과 간소함’

 오는 9월 13일은 우리나라 고유 명절인 추석(秋夕)이다. 추석 제사상의 기본 원칙은 ‘간소하되 정성으로 모시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의 방법들이 제사상 차림의 ‘원칙’으로 둔갑해 통용되고 있다. 이에 잘못 알려진 제사상 차림 방법을 짚어보고 제사상 차림의 기본을 알아봤다.

 나의 존재를 되새기며=추석은 설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유 명절로 음력 8월 15일이다. ‘가을의 한 가운데’라는 의미를 가진 ‘중추절’ 또는 ‘한가위’라고도 불리는 추석은 ‘달이 유난히 밝은 명절’이다. 또한 추수가 시작되는 시기인 만큼 힘든 농사를 마친 것에 감사하는 ‘농공 감사제’의 의미도 있다. 이처럼 추석은 그해 처음 수확한 곡식으로 하늘과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가을 추수의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다. 이에 황영례 나라얼 연구소장은 “추석은 조상을 모시는 날로서 조상에게 감사하며 나의 존재를 되새기는 날”이라고 말했다.

 추석의 탄생은?=우리나라의 고유 명절인 추석의 유래에 관한 명확한 문헌 자료는, 수서(隋書)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7세기에 기록된 수서의 신라(新羅) 편에는, “8월 15일이면 풍악을 베풀고, *사궁(射弓), *영관(令官)에게 말과 삼베로써 상을 주었다”라는 기록에서 오늘날 추석 명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12세기의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 시절 궁중에서 음력 7월 16일부터 8월 14일까지 나라 안의 여자들을 모아 두 명의 왕녀를 중심으로 두 편으로 갈라, 왕녀 둘이 각각 한 편씩 거느리며 밤낮으로 *길쌈을 했다. 그리고 8월 15일에 이르러 길쌈의 양을 견줘 진 편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춤과 노래 및 여러 놀이를 벌이는 것이 ‘가배’였다. 따라서 신라 시대 8월 15일의 민족 명절이 가배임을 미루어 보았을 때, 추석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본질을 잃은 제사상 차림=현대에 이르러서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와 명절에 지내는 ‘차례’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이 두 가지를 포괄하는 ‘제사’라는 개념만이 남았다. 제사상 차림의 기본 원칙은 ‘정성’과 ‘간소함’이다. 하지만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반상(班賞)의 개념이 사라졌고 이에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양반 가문으로 둔갑하기 위한 수단으로 ‘화려한 제사’를 지냈다. 이후 1969년, 전통적인 관혼상제의 번잡함을 없애기 위해 의례를 단순화한 ‘가정의례준칙’이 마련됐지만, 제사상 차림의 본질인 ‘간소함’에 이르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좌포우해 등이 제사상을 차리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다. 이는 일부 언론에서 이러한 원칙들을 강조하고, 초등학교 참고서와 국가 자격증인 ‘조리 기능장 시험’에서 홍동백서에 따라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고 교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제례 *진설을 알 수 있는, 조선의 대표 예전(禮典)인 ▲『국조오례의(国朝五禮儀)』, 도덕 실천 지침서인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진설 규범인 사계 김장생의 ▲『가례집람(家禮輯覽)』, 관혼상제에 대해 저술한 가례서(家禮書)인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모두 살펴봐도 홍동백서, 조율이시와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해당 문헌들에는 단지 1열에 ‘과(果)’를 진설하라고 규정돼 있을 뿐, 과일의 종류와 배치는 일절 언급돼 있지 않다. 또한 국조오례의 진설도에는 어서육동으로 진설돼 있지만 격몽요결·가례집람·사례편람의 진설도에는 어동육서로 진설돼 있다. 더불어 국조오례의 진설도에는 우포좌해로 나타나 있는 반면, 격몽요결·가례집람·사례편람의 진설도에서는 좌포우해로 나타난다. 심지어 사례편람의 진설도에서 좌포우해는 젓갈을 의미하는 해(醢)뿐만 아니라, 식혜를 의미하는 ‘혜(醯)’도 진설돼있다. 즉 제사상 차림 방법이 유교 문화에서 비롯됐으나, 정작 유교와 관련된 문헌에는 그 용어와 규칙이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사상의 기본 원칙인 ‘세종오례의 진설도’(사진출처: 주간한국)
제사상의 기본 원칙인 ‘세종오례의 진설도’(사진출처: 주간한국)

 이외에도 일명 ‘제사상 금지 음식’으로 복숭아, ‘-치’로 끝나는 생선, 고춧가루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앞서 언급한 문헌 어디에도 해당 내용은 없다. 이처럼 제사상은 예와 정성을 본질로 할 뿐 정해진 음식과 규칙은 없으며, 집안의 형편에 따라 제사상을 차리면 된다. 이에 황광해 음식평론가는 “홍동백서와 조율이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엉터리 제사상 규칙”이라며 “제사상 차림의 기본 원칙은 오로지 예와 정성이기에, 형식을 고수하기보다는 조상이 좋아하는 음식이면 무엇이든 제사상에 올려도 좋다”고 말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쪽, 흰빛의 과일은 서쪽에 놔둔다.
*조율이시(棗栗梨枾): 대추·밤·배·감의 순서로 놔둔다.
*사궁(射弓): 고려 시대에, 활로 무장한 특수부대.
*영관(令官): 음악을 맡아보던 벼슬아치.
*길쌈: 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모든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반상(班賞): 지위의 차례에 따라 상을 나누던 일.
*어동육서(魚東肉西): 어류는 동쪽에 두고 육류는 서쪽에 놔둔다.
*좌포우해(左脯右): 육포는 왼쪽에 두고 젓갈은 오른쪽에 놔둔다.
*진설: 제사나 잔치 때, 음식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음.

놀이판에 차례를 담다

 제사상을 진설하는 예법은 상당히 어려워 이를 익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100년 전 창안된 ‘습례국(習禮局)’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예법을 쉽게 배울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이 지난 2013년 밝혀졌다. 이에 습례국의 창안 배경과 구성, 그리고 그 문화적 의의를 알아봤다.

 탁와 정기연 선생, 습례국을 창안하다=습례국의 창안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탁와(琢窩) 정기연 선생(鄭璣淵, 1877~1952)은 경산의 근대 유학자로, 대부분의 유학자가 퇴계(退溪) 이황의 사상을 따랐던 영남지방에서는 드물게, 우암(尤菴) 송시열의 사상을 따랐다. 이에 그는 송시열의 후손인 송병선과 송병순 형제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하지만 송병선과 송병순은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나라를 빼앗기자 음독 자결을 했다. 정기연 선생은 나라를 빼앗기고 두 스승까지 잃게 되자, 고향인 경산으로 내려와 ‘우경재(寓敬齋)’라는 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이에 지난 7월 6일, 나라얼 연구소에서 ‘두 스승의 순절을 지켜본 탁와 정기연’을 주제로 강연한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화장품공학부)는 “정기연 선생은 ‘우리말’과 ‘우리 예(禮)’ 등 우리 것을 지키는 데 힘썼다”며 “일본에 항거해 순국한 두 스승의 가르침대로 정기연 선생은 우리 것을 사랑하고 이어나간 애국자”라고 전했다.

 한편 정기연 선생은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부녀자들이 우리 문화를 잊어가고, 아이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에 그는 ‘우리 예’를 22권 11책의 책으로 정리한 『탁와집(琢窩集)』을 집필했다. 이중 탁와집 7책 권14, 『습례국도설(習禮局圖說)』은 어려운 한문으로 쓰인 예법을 한글로 풀어 써 ‘우리 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습례국을 창안했다.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장은 “정기연 선생은 *맹모삼천(孟母三遷)에 입각해 부녀자와 아이들이 놀이로 자연스럽게 제례를 익히도록 습례국을 고안했다”며 “문화적으로 압박받던 일제강점기에도 우리의 전통문화가 전승될 수 있도록 힘쓴 유학자”라고 말했다.

 습례국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습례국은 놀이를 위해 필요한 ▲습례국 판, 주사위처럼 숫자를 결정하기 위한 도구인 ▲‘전자(轉子, 굴리는 것)’, 습례국 판에 놓일 말인 ▲‘설자(設子, 베푸는 것)’, 습례국에 대해 소개한 ▲『습례국도설』로 구성돼 있다.

습례국 놀이의 구성품(사진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습례국 놀이의 구성품(사진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습례국 판(사진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습례국 판(사진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습례국도설(사진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습례국도설(사진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습례국 판은 전자를 던져서 나오는 수만큼 설자를 전진시켜 진로와 위치를 제시하는 일종의 놀이판이다. 또한 전자는 습례국 판에 진설할 수 있는 가짓수를 나타낸다. 더불어 설자는 전자를 굴려 나오는 숫자에 따라 습례국 판에서 제시한 목적지까지 가는 위치를 표시하는 도구로, 윷놀이에 비유하면 윷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습례국도설』은 습례국 판의 제작 동기와 놀이 방법 등을 설명해 습례국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습례국이 창안된 1919년 당시만 해도 선비의 문집은 한문 중심이었다. 한문은 선비의 기본 언어였고, 한글은 대게 부녀자와 아이들을 위한 언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례국과 『습례국도설』은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돼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기연 선생이 습례국을 만드는 데 있어서 부녀자와 아이들을 고려해 한글을 사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습례국도설』이 한글로 작성된 것에 대해 황영례 나라얼 연구소장은 “일각에서는 정기연 선생이 한글의 우수성을 인지해 습례국과 『습례국도설』을 한글로 썼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습례국은 한문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제례를 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습례국은?=지난 2013년에 발견된 습례국은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당시 홍윤표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회 위원장은 『습례국도설』을 연구하던 중, 습례국 판을 정기연 선생의 후손들이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그는 습례국 판을 직접 연구하고자 정기연 선생의 직계 후손 모임인 ‘탁와종회’에 습례국의 기증을 권한 결과, 습례국 판은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됐다. 이후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2017년 추석을 맞이해, 습례국을 사람들에게 처음 공개했고, 관련 학술 강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에 홍윤표 위원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글은 평민들만 사용했던 언어라는 일본 측의 주장이 습례국의 발견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습례국의 발견은 선비 문집이 한글로 작성됐다는 의의가 있어 한글의 변천 및 발전과 관련된 연구에 활력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0년, 우리 대학교는 정기연 선생의 후손들이 책 보관에 어려움을 겪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보관하겠다며 기증을 요청했다. 이에 우리 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탁와집』을 비롯해 정기연 선생이 집필한 1,451권의 책이 소장돼 있다. 하지만 송의호 교수는 “『탁와집』을 소유하고 있는 영남대에서 관련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며 “영남대에서 습례국 놀이를 재현하고 『탁와집』에 대한 후속 연구가 활발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맹모삼천(孟母三遷):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와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

놀이가 말해주는 제례 속으로!

습례국 놀이방법

 ‘습례국(習禮局)’은 ‘전자(轉子, 오른쪽 주사위 참고)’를 굴려서 나오는 ‘설자(設子, 말판)’를 놀이판(위쪽 습례국 판 참고)의 정해진 곳에 놓아 진설해 나가는 방식이다.

준비물: 습례국 판, *주사위, *말
*말: 습례국 판에 올려놓기 좋도록 작은 소품으로 준비해 주세요. (예: 지우개)
*주사위: 오른쪽 주사위 그림을 오린 후 풀로 붙여 사용하세요.

 

1. 우선 편을 둘로 가른 후, 서로 다른 편 사람이 옆에 앉도록 자리를 배치한다.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전자를 굴린다.

2. 전자를 굴려 나오는 숫자만큼 음식을 진설한다. 전자의 숫자로는 ‘일(一), 이(二), 삼(三), 공(空)’이 있다.

3. ‘일(一)’이 나오면 1번 대추에 설자를 놓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설해 나간다. 처음 전자를 굴렸을 때 ‘이(二)’가 나오면 1번 대추부터 2번 칸에 있는 밤까지 진설하고, ‘삼(三)’이 나오면 3번 칸에 있는 감까지 동시에 진설한다.

4. 그렇게 돌아가며 전자를 굴려 음식을 진설해 나간다.

5. 만약 같은 편 사람이 연속으로 같은 숫자가 나오면 음식을 한 개 더 진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二)’가 연속으로 나오면 음식 세 개를 진설하고 ‘삼(三)’이 연속으로 나오면 음식 네 개를 진설한다.

6. ‘공(空)’이 연속으로 나올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진설한 음식을 한 개 덜어야 한다.

7. 이와 같은 식으로 놀이를 진행하다가 어느 한 편이 1번 대추부터 22번 산적까지 모두 진설하게 되면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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