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우리, 분노의 이유
[시선] 우리, 분노의 이유
  • 김달호 사회부장
  • 승인 2019.09.02 20: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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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서 사회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사회의 한 사람으로 ‘지켜야 할 것’을 교육받는다. 무엇이 정의인가. 무엇이 올바른가.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본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배움의 과정에서 우린 그것이 곧 도덕이며, 그것이 곧 사람이 살아가며 지켜야 할 법이고, 그것이 있기에 지금 이 사회가 유지됨을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사회로 나와 살아가면서, 오히려 점차 그러한 정의를 잃는 순간을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주위에 있는 일이 아닌 한 국가, 한 사회, 한 집단을 향한 일일 때 우리의 충격은 그저 설명하기 힘든 범위로까지 측정된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수출규제는 일본 스스로가 말한 국제 무역의 ‘정의’를 위협했다. G20 오사카 정상회담에서 말한 아베 총리의 ‘자유 무역’은 그저 그들이 정의 내린 제한된 자유 무역에 불과했다. 또한 지난 8월에 불거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논란은 공정한 사회의 ‘정의’를 위반했다. 우린 경쟁 사회에서 공정함이라고 하는 규칙으로 인해 정당한 승리를 얻는다. 공정함이 없다면 강자의 무지막지한 승리만 존재하지만, 공정함이 있었기에 패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패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일부 논란으로 만들어진 경쟁의 새로운 이면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경쟁의 불공정함을 강조해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된 불매운동, 촛불시위 등은 공통된 이유를 내포한 하나의 분노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현시점에서 표면적으로 말하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의혹 해명 등은 그것의 배경에 정의가 무너진 현재에서 다시 정의가 쌓여지길 바라는 것을 깔아두고 있다. 더 나아가 오래전부터 곪아져 왔던 악습이 지금에서라도 제대로 세워지기 바라며, 그런 끊어진 악습을 통해 우리를 잇는 또 다른 세대가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길 모두가 원하기에 이번 분노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노한 이들 중 일부는 분노를 잘못 표출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저 남들이 분노했기에 자신도 이에 편승해 분노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자신도 시민 중 한 명이라는 이유로 그 행위의 참가를 정당화하지만, 그것은 시류를 따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이 무언가에 분노하고 있다면 자신이 왜 다수의 분노에 따라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능동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 다른 이들은 분노를 폭력이 유발된 상황을 변명하는 그 이유로 사용한다. 자신이 분노했고, 이 사회 모두가 분노한 일이기에 남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이는 극단적으로 전쟁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결코 좋지 못한 결과를 야기하므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절제된 분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절제를 통해 그 사건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도 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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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J 2019-09-12 16:03:33
올해 졸업생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이 나라에 종북세력과 진정한 매국노들이 사라지는 데에 힘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