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XS 공간
[사설] XS 공간
  • 영대신문
  • 승인 2019.09.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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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산은 주변의 낮은 산을 통해서 설명이 되고, 빠른 자동차는 옆에서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를 통해 그 존재가 증명이 된다. 그렇다면 ‘젊음’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상대어인 ‘나이듦’이 우선 떠오르지만 흔한 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젊음을 ‘기성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젊음은 익숙함보다는 낯섦에 가깝고, 노련함보다는 서에 가깝다. 그래서 젊음은 어쩐지 미숙함과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한 사회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쉽고 편할 수 있지만, 젊음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의심하고 경계한다. 바로 그런 의심과 경계의 고민 속에서 젊음은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가능성과 강렬한 힘을 응축하고 있다.

 젊은 문화는 기성 문화에 대한 반동에서 시작된다. 아직 뚜렷한 이유나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했어도, 젊은 문화는 무언가를 ‘뒤집고’ ‘다르게’ 해 보려는 생각과 행동들이 쌓여가는 현장이다. 이는 저 멀리 역사적인 사실들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동시대에 우리 주변의 무수한 증거들이 널려 있으며, 우리는 이미 젊은 문화를 직접 생산하고 소통하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SNS, 유튜브 등의 플랫폼은 이런 젊은 문화를 증폭시키고 확장하는 데 더없이 적합한 수단이 되었다.

 영대 앞 오렌지 거리라는 이름은 IMF로 소비가 위축되었던 시기에 상인들이 붙인 것으로 압구정 오렌지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거리로 기획이 되었으니 일단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식당, 술집, 카페, 오락 공간 등이 밀집한 이 거리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빠지질 않는다. 오렌지족이라는 이름은 90년대 초반 압구정 거리의 신세대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지하철 3호선은 오렌지색이다)이는 산업화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부족함 없는 젊은 세대들이 향유했던 유행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 정도의 소비층이 될 수 없었던 한 무리는 홍대 앞에서 스스로를 낑깡족이라 부르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를 통과하며 맞이한 90년대는 정치적·경제적인 여유로움이 있던 시기로 문화의 황금기와도 같았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젊음의 새로운 감수성과 에너지는 거리에서 폭발했다. 대중음악, 미술, 그래픽, 출판 등 문화 현상은 매체가 현상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들은 기성의 질서에 편입되었다. 거리는 욕망의 해방구로써 좀 더 세련되어졌고 그곳에는 자본의 위력이 더욱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오렌지 거리의 젊은 문화란 무엇일까. 이미 만들어진 소비 공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젊은 문화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는 ‘반동’이 부족한 것이며, 기성 소비 공간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지나치게 무뎌진 것이다. 이것은 대학 앞에 서점이 없다거나 갤러리가 없다는 정도의 아쉬움이 아니다. 오프라인 서점과 상업 갤러리를 억지로 만드는 것은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낭비가 되고 말지도 모른다. 문화에 대한 이런 식상한 접근이 결국 또 다른 소비 공간을 만들 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창작자들이 활동하는 장소가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마련이 된다면, 활력을 불어넣는 여지를 만들어 줄 것이다. XS(엑스스몰) 공간이 필요하다. 엉뚱하고 하찮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을 드러낼 장소가 필요하다. 작은 장소이니만큼 임대료도 저렴해야 하고, 그만큼 실험과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적어야 한다. 젊은 문화는 창작자들(Makers)의 생산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젊은 문화는 위에서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게릴라처럼 만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몇몇 공유 오피스 시설이 정착하지 못하는 것에서 볼 수 있도록 제도가 XS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은 헛발질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새롭게 올라가는 고층 빌딩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도심 재생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것을 마냥 기쁘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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