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칼럼니스트] 낙태죄의 폐지와 성교육
[나도 칼럼니스트] 낙태죄의 폐지와 성교육
  • 최혜림(조경2)
  • 승인 2019.05.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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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가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270조 1항(의사 등의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두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란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인 우위를 부여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로써 1953년에 제정돼 2019년인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던 낙태죄는 66년 만에 폐지됐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이 크게 갈린다. 한쪽에서는 낙태는 엄연한 살인이며, 낙태죄 폐지가 생명경시풍조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 반대쪽에서는 낙태죄 폐지가 여성 인권 향상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여성단체는 낙태죄 폐지를 투쟁의 결과이자 대한민국 여성 인권사의 큰 전진으로 평가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성교육에서 낙태는 큰 죄이며 소중한 생명에 대한 살인이라고 했다. ‘피임은 성행위에 대한 책임이며, 낙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세상에 100%의 피임이라는 것은 없으므로 언제나 자신의 신체를 아껴야 한다’ 등이 보건 선생님들의 공통된 지론이었다. 낙태를 주제로 한 성교육 시간은 낙태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태아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성적 행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으로 대부분 마무리를 지었다. 낙태의 원인을 무책임한 성관계로 보는 시선은 성교육의 실상 속에서 필수적이었다. 성에 대한 솔직한 발언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기의 임신을 막기 위해 동원한 충격요법은 어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체·경제·사회적인 이유 등으로 낙태를 결정하는 산모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은 성교육의 바탕에는 계획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만이 존재했다. 선생님들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에 100% 완벽한 피임은 없으며, 피임의 여부를 떠나 산모와 태아에게 비할 데 없이 큰 무게로 다가오는 ‘출산과 낙태’라는 문제를 다룰 때는, 이러한 일반화와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낸 시선을 가지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헌법재판소는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선택에 대해 “인생관 및 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심리·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고 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진보적인 성의식을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폐지로 인해 자유분방한 성적 쾌락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에 확산돼 여성이 성도구화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며 “이러한 우려를 조금이라도 살폈다면 오늘과 같은 판결은 없었을 것”이라는 한국교회총연합의 주장은 보수적인 성의식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주장에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선진적인 성교육과 낙태죄의 폐지는 꼬인 매듭의 양 끝단이라고 생각한다. 양쪽에서 풀어나가다 보면 중간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며, 어느 쪽에서 시작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양쪽 끝을 잡고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성 인권의 도약에 기여한 발명품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세탁기와 피임 기구의 발명이다. 이는 여성 인권에서 출산과 가사는 불가분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낙태죄의 폐지가 여성 인권의 도약과 선진적인 성교육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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