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자와 샌드위치 혁명
[사설] 의자와 샌드위치 혁명
  • 영대신문
  • 승인 2019.05.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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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행위의 근저에 성적인 욕구가 자리해 있다는 통찰은 프로이트의 것이었다.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니체는 권력의지야말로 인간 행동의 근간이라고 보았다. 이 논리들은 한편으로 서구 기독교에 대한 대항테제로서 등장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육체가 있는 한, 바울이 말한 죽고 거듭난 존재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마르크스는 물질적 균등화 없이 기독교적인 하나 된 공동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약자가 권력을 갖기 위해 만들어낸 노예 도덕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이라고 비판했다. 오늘날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무신론적 과학주의는 인간의 기원이 신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본질에 대한 사유는 어느 경우에나 일말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의 혁명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우리 대학교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

 요즘 학교 풍경이 달라졌다. 의자 혁명이라고 해야 하나. 종합강의동, 인문관, 공대, 중앙도서관의 각 로비마다 새 테이블과 의자들이 들어왔다. 외국 대학을 여행할 때마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훌륭한 커리큘럼이나 교수진이 아니라, 캠퍼스 구석구석 쓸모 있게 배치된 의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이었던 것은 잔디밭에 무심히 던져 놓은 것 같은 하버드대의 의자들이다.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분홍 의자들, 명랑하게 풍덩 뛰어들고 싶은 소파들. 마치 유치원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랄까. 학생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의자들을 조합하여 즉석토론을 벌일 수 있고, 소파에 누워 5월의 깊은 초록 하늘을 응시할 수 있다. 영남대가 넓은 캠퍼스에 비해 강의실 외에는 어디 한 군데 편안하게 앉을 데가 없다는 결핍감이 아마도 나를 의자 편집증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학교가 달라졌다. 공강 시간에도 학생들은 삼삼오오 편안하게 앉아서, 학교 공간을 즐기고 있다. 의자는 가구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틈틈이 앉아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로비의 작은 의자 하나가, 그를 미래의 학자로 이끌어줄 제일 원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대학교에서 의자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누군가는 그 사람이 먹은 음식 목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철학자는 대학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구내식당의 샌드위치라고 답했다. 캠퍼스 내에 값싸고,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샌드위치가 있다면 얼마나 빨리 학교에 오고 싶겠는가. 좋은 음식은 학생들과 교수들의 전두엽을 자극하여 창의력을 높여 주고, 없던 실력도 만들어낼 수 있는 위력을 지닌다. 그들의 뇌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면, 자아도, 세상도 달라질 것이다. 대학의 음식은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와 세계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몸이자, 학문이고 미래다. 학교 음식의 변화가 입학률과 취업률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뉴스는 미리 써두어도 좋을 정도이다.

 잘 먹어야 잘 놀 수 있고, 잘 공부할 수 있다는 데에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 뿐 아니라 동양의 성현들도 다 동의할 것 같다. 삼국지 <위서>에서 조조도 최고의 병법은 병사들을 잘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다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성, 물질, 권력이 인간에게 다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은 만족하지 못한다. 더 큰 공동선에 기여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기묘한 존재가 인간이다. 학교 구성원들 중에서 각자도생의 처절한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살리고, 학교를 살리는 데 마음의 굳은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대학은 믿기 힘든 변화를 거듭해갈 것이다. 그 마음의 작은 의자가 이미 우리들의 로비에 와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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