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空想)] 신문의 ‘또 다른’ 기능을 발견하는 순간
[공상(空想)] 신문의 ‘또 다른’ 기능을 발견하는 순간
  • 윤신원 문화·편집부장
  • 승인 2019.04.01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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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올해로 영대신문 기자로서 활동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어오면서 발견했던 신문의 ‘또 다른’ 기능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문의 기능이라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보도, 교육, 홍보 등의 기능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필자가 제목에서도 언급했듯, 이러한 기능들과는 차이가 존재하는 ‘또 다른’ 기능들이 있다. 이를 언급하기에 앞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이 문제들은 영대신문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어느 누구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영대신문에 막 입사해 수습기자로서 자긍심을 갖고 활동하던 5월, 대동제가 개최되고 있었다. 이 시즌의 캠퍼스엔 축제 분위기에 취해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잔디밭 또는 땅바닥에 앉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영대신문을 ‘돗자리’ 삼아 앉아있었다. 더불어 주막을 운영하던 어느 학과에선 튀김을 판매하는데, 요리 현장을 살펴보니 바구니에 영대신문을 깔고, 그 자리에 튀김을 넣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신문이 ‘기름종이’로 사용됐다.
이후 수습기자를 뗀 필자가 기자로 활동하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건물 밖으로 향하는데, 비가 추적추적 쏟아지고 있었다. 하필 그날에 우산을 챙기지 못해 우울해하던 찰나, 어떤 학생 두 명이 영대신문 배부대로 향하는 것이었다. ‘학우들이 신문을 읽으려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그러한 생각을 고이 접어버렸다. 그들이 펼친 영대신문은 비를 피하기 위한 ‘우산’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신문의 면 편집을 담당하는 편집부장이 됐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남대역 지하철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었던 쓰레기를 버리고자 대합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찾았다. 그때 필자의 눈에 들어왔던 건,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들을 받쳐주고 있는 영대신문이었다. 그렇다. ‘쓰레기통 깔개’로 활용됐다. 영대신문이 돗자리로, 기름종이로, 우산으로 쓰일 땐 느껴지지 않았던 감정들이 북받쳐 올라왔다. 내 손으로, 내 머리로 낳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영대신문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려도 아쉽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도 다른 신문의 ‘또 다른’ 기능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도 탓할 수 없다. 하지만 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신문의 ‘또 다른’ 기능을 발견하는 매 순간은 차마 적응되지 않는 순간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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