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전조등
[시선] 전조등
  • 김달호 사회부장
  • 승인 2019.04.0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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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음을 30초 이상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전화를 건 대상이 중요하지 않다면 바로 끊어버릴 것이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는 불문율처럼 전화를 오랫동안 붙잡는 습관이 있다. 심지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해주겠다는 친절한 멘트가 나올 때까지 말이다. 취재원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취재원이 정말 바쁘거나, 아니면 취재를 거절하기 위한 ‘무언의 항의’일 것이라고 말이다.

 왜 쓰시려는 것이죠? 오랫동안 필자의 경험상 취재원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고르라면 이 말을 고를 것이다. 왜 쓰시려는 것이죠? 이 말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필자는 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그의 다음 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인터뷰를 안 해줄 것이며, 더 나아가 기사를 쓰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목격하고, 그 집단이 대립하는 상황을 자주 본다. 그리고 갈등하는 두 상대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습득해 무기로 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들이 갖는 무기는 ‘카더라 통신’, ‘소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주위를 떠돌고 이를 대립하는 대상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 신문은 그러한 수많은 소문과 카더라 통신 속에 진실을 캐는 역할을 한다. 수많은 껍질로 둘러싸여 양파 같은 사건이라도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사실’을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문이 취재원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취재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갖고 있던 진실에 한발짝 다가 설 수 있다. 하지만 취재원은 그런 사실에 더러 겁을 낸다. 이것이 자신 혹은 자신의 집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취재원은 취재를 거절하고 신문을 외면하기에 이른다.

 “토끼 같은 사람들이 하얀 안개의 나라에 산다” 김광규 시인의 ‘안개의 나라’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우리는 제대로 모르는 사실이 안개로 인해 가려지면 토끼와 같이 귀만을 쫑긋 세운다. 보이지 않으니 듣는 것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실만 듣는다면 좋다. 하지만 그것이 소문과 카더라 통신이 담긴 정보라면 크나큰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신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정보의 바다에서 진실을 찾는 신문을 모든 취재원이 적극적으로 환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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