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모모와 도둑맞은 시간들
[사설] 모모와 도둑맞은 시간들
  • 영대신문
  • 승인 2018.11.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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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밥 한 끼 같이 하시죠’, ‘조만간 봬요’.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건네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 ‘조만간’이라는 시점은 곧 다가올 수도 있고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올 수도 있다. 최근 우리 대학 학생들을 만나보면 대학의 낭만은 점차 사라지고 대학생의 일상은 더욱더 빠듯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과제나 발표, 아르바이트, 학회 활동, 학원, 취미활동 등등.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다. 교수와 직원 모두 눈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는 마찬가지다.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총알보다 더 빨리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일까, 미하엘 엔데가 쓴 동화소설의 주인공 모모가 그리워진다. 이 책은 시간을 훔치는 도둑들과 그 도둑이 훔쳐 간 시간을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모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회색 신사로 불리는 시간 도둑들은 시간저축은행의 영업사원들인데, 사람들에게 낭비되는 시간을 저축하도록 강요한다. 남는 시간을 빼앗기다시피 한 사람들은 점점 더 바쁘게 살아간다. 여유롭게 생활하던 지난 시간과는 달리 새에게 먹이를 줄 시간도 없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에도 눈길 한 번 주질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장면들은 어쩌면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주인공 모모는 회색 신사들이 강탈해간 시간을 ‘선량한’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시간도둑들과 사투를 벌인다. 모모의 노력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돌려받고 나서야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작가가 살았던 독일로 잠시 눈을 돌려보자. 가끔 독일인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면 거의 1주일이 지나서야 답이 온다. 이메일을 확인했지만 바로 답을 보내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해서 국제교류 업무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독일 쪽 기관의 이메일 답장 방식에 대해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독일 사람들은 이메일을 읽고도 답을 바로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종이로 편지를 쓰던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이리라. 예전에 편지를 보내면 도착하는 데 수일, 읽고 답장 쓰는 데 수일, 상대방에게 도착하는 데 수일 걸렸다. 이런 오래된 습관이 보내고 받는데 몇 초,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이메일 글쓰기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때로는 엄청난 속도와 무한 경쟁 속에서 더 많은 ‘시간’들을 모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책에서 한국인들이 놀 줄 몰라 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 시대 사람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려면 나태해지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노는 것은 즐겁고, 즐거우면 행복하기에 놀이에서 즐거움을 찾은 행복한 사람이 더 창의적이라 것이다.

 다시 ‘모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모모의 친구 푸지 씨는 시간 도둑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고, 일과 후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도 만나 책을 읽기도 했다. 또 사랑하는 다리아 양에게 꽃을 들고 가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70년대 포크송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사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다 알고 있었다. 이제 종강도 머지않았다. 달력의 마지막 장만 남겨두고 있다. 지금껏 회색 신사들에게 속아 도둑맞은 시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성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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