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회 천마문화상 - 심사평(시)]
[49회 천마문화상 - 심사평(시)]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8.11.26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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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년에 비해 투고작의 양도 작품의 수준도 다소 저조했다. 문예창작과 재학생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이 적은 반면, 창작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의 투고작이 많았다. ‘추정된다’는 것은 어떤 특징이 감지된다는 것이고, 이는 능숙함이나 세련됨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정한 훈련의 성과로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성을 중요한 심급(審級)의 기준으로 삼는 창작 영역에서 이는 꽤 중요한 문제이다. 개성이 학습(學習)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하면 습작(習作)의 수준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반면 대부분의 투고작들은 시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고, 감상적이거나 대체로 뻔한 내용이었다. 자신에게는 각별하겠지만 타인에게는 별로 의미 없거나 식상한 정념(情念)들이 나누어진 행 속에 배치되어 있었다. 행갈이가 되어 있다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투고작 중에 4∼5인의 작품을 눈여겨보았고, 그 가운데 포즈에 그친 작품들은 내려놓았다. 「광안」은 말을 다루는 능력이 능숙하지는 않지만 사물을 오래 관찰하고 나름의 상상력을 부여하여 끝까지 밀고 간 노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장소에 중의적인 의미를 더하여 자신의 시적 사유를 마무리한 노력은 칭찬할 만하다. “돌아오지 않는 모든 것들로/뒤돌아도 나를 바라볼 바다의 얼굴이 만들어진다”는 시의 결미는 괜찮은 도착점이다. 말을 덜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 골목의 어귀에는 초원을 파는 정육점이 있다」는 잘 꾸려진 작품이다. 처음과 중간과 끝이 정연한 이 글의 주인은 사물에서 상상력을 끌어내어 길을 낼 줄 아는 자이다. 그 길-내기에 개성을 더할 수 있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습작(習作)은 말 그대로 날갯짓을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이다. 자기 것으로 익혀서 과감히 멀리 멀리 날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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