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표현, 그래피티
자유로운 표현, 그래피티
  • 안재탁 준기자, 임시은 준기자
  • 승인 2018.10.08 1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래피티’는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낙서처럼 그리는 그림을 뜻한다. 그래피티는 과거 낙서로 간주돼 부정적 시선을 받으며 ‘반문화’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그래피티를 예술의 한 영역으로 인정하는 동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래피티에 대해 ‘예술’이 아닌 ‘공공기물 파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그래피티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된 배경과 그래피티를 예술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입장 차이를 알아봤다.

 거리의 낙서, 문화가 되다=그래피티는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래피티는 1960년대 미국 브루클린 지역에서, 기득권 시민들로부터 차별과 억압을 받은 미국의 흑인 빈민층이 억눌린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나타났다. 당시 흑인들은 거리의 벽이나 지하철, 버려진 차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장난스러운 문자와 상상력이 넘치는 낙서를 칠했다. 또한 소유주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장소에 그래피티를 그렸기에,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자 별명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후반에 미국 방송 매체가 전파됨에 따라 미국의 그래피티 문화가 함께 전해졌다. 이후 국내 최초의 그래피티 팀인 ‘바프’(V.A.F)가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공연 무대를 그래피티로 꾸밈으로써, 그래피티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가수 HOT가 그래피티를 활용한 앨범 재킷과 뮤직비디오를 발표함에 따라, 대중들이 압구정 굴다리 및 부산대 지하철역 다리 아래 공간 등을 그래피티 장소로 조성하기도 했다. 진휘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술이론과)는 “그래피티는 다른 예술 작품과 달리 예술적 조예가 깊지 않아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며 “일상에서 그래피티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면 대중들의 관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오늘날 한국적 감성을 담은 그래피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2016년, 심찬양 그래피티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의 모습과 한글을 그래피티로 표현함으로써 미국 현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해당 언론은 아름다운 한글과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을 담은 그래피티가 대중들의 감동을 자아냈다고 평가했다. 이에 전유림 디아크 아트플랜 대표는 “그래피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서구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최근 한국적 감성을 담은 그래피티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피티, 예술인가 불법인가=최근에는 그래피티를 하나의 작품으로서, 다양한 공간에 전시하기도 했다. 대구 예술발전소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수창동, 아트브릿지’라는 주제로 그래피티와 관련된 여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지난 7월, 경기도미술관과 동두천시는 ‘동두천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오래된 폐건물의 얼룩진 공간을 그래피티로 꾸밈으로써 이를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평론경영전공)는 “그래피티는 본래 낙서에서 시작했기에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래피티를 ‘기물을 훼손하는 불법행위’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6월, 한 작가가 우리나라의 통일을 기원하며 독일 베를린으로부터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에 그래피티를 그려 논란이 됐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베를린 장벽에 그래피티를 그린 작가를 처벌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게시되며 약 1만 5천 명의 시민들이 이에 동의하기도 했다. 진휘연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쪽방 길, 터널의 내부 벽 등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며 “그럼에도 공공기물이나 무허가 장소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것은 불법이므로 이를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최병식 교수는 “그래피티가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공공기물 훼손 행위라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며 “그래피티 작가들 모두 이러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 속 그 의미에 대해

 경주 우양미술관은 오는 11월 30일까지 현대 예술로서의 그래피티에 대해 알리기 위해 ‘그래피티 거리미술의 역습’ 전시를 개최한다. 이에 해당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두 작품을 알아봤다.
 

Favorite (알타임 죠 작가, 2018)
Favorite (알타임 죠 작가, 2018)

 ‘알타임 죠’ 작가의 ‘Favorite’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일본 만화, 게임, 흑인문화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독창적인 기법으로 나타낸 그래피티 작품이다.

 작가는 아톰, 심슨, 벤츠 자동차 등 대중적인 캐릭터나 물건들을 그래피티로 나타냄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그래피티의 친근함을 전하고자 했다. 더불어 작품 속에는 스프레이 캔 뚜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더 캐퍼스’(모자를 쓴 사람들)라는 독창적인 캐릭터가 표현되기도 했다. 또한 물감이 흐르는 듯 표현하는 ‘드리핑 기법’으로 주인공들의 모습을 나타냈다.
 

Endanger Species (켄지 차이 작가, 2018)
Endanger Species (켄지 차이 작가, 2018)

 ‘켄지 차이’ 작가의 ‘Endanger Species’는, 작가의 고향인 말레이시아의 멸종위기 동물인 수마트라 코뿔소 코뿔새 말레이시아 곰 긴 코 원숭이 천산갑을 담은 작품이다.

 작품 속 멸종위기 동물들은, 벌목된 나무, 앙상해진 나뭇가지 등 훼손된 숲의 배경과 함께 그려졌다. 인간들의 무자비한 개발로 인해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는 현실을 풍자하기 위함이다. 또한 동물들은 갑옷을 두른 용사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는 인간의 개발로부터 자신들의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진제공:우양미술관

그래피티 예술가를 만나다

전유림 대표가 작업한 그래피티 작품
전유림 대표가 작업한 그래피티 작품

 ‘디아크 아트플랜’은 그래피티, 벽화, 트릭아트를 그려온 벽화 전문 미술팀이다. 전유림 디아크 아트플랜 대표(조소과97)는 우리 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현재 ‘디아크 아트플랜’ 팀의 대표로, 대구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래피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벽에 라커를 빠르고 크게 분사해 그리는 그래피티에 매료돼 그래피티를 시작했어요. 군 제대 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그래피티 활동을 함께 하기 위한 팀을 구성했고, 이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20년간 ‘디아크 아트플랜’ 팀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피티의 예술적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래피티란 ‘거리를 전시회로 바꾸는 마술’이라고 생각해요. 미술관에 가지 않더라도 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죠. 그래피티 예술은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하지 않기에, 누구나 그래피티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피티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래피티는 다른 예술 작품에 비해 비교적 수명이 짧아요. 외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본연의 색을 잃고, 가게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해당 가게가 사라지면 작품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또한 우리나라는 그래피티 작가들이 부족한 편이기에, 대중들이 그래피티 작품을 접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아쉬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반 그림과 달리, 강렬한 색채와 속도감이 느껴지는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래피티의 매력이에요. 대중들도 그래피티에 더욱 관심 가짐으로써, 그래피티의 수많은 매력을 느끼길 바라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