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in 대구人] 따뜻하지만 강인한 시인, 이상화
[예술 in 대구人] 따뜻하지만 강인한 시인, 이상화
  • 임시은 준기자
  • 승인 2018.10.08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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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화는 대구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을 한 시인이다. 그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이 식민통치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이 담긴 작품을 썼다. 이에 조영수 이상화 기념사업회 문화해설가를 만나 이상화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알아봤다.

 이상화는 일제강점기 당시 저항 시인으로 항일운동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항일 활동은 무엇인가요?
 
 이상화는 총과 칼 대신 펜으로 항일운동을 한 시인이에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는 시를 쓰기도 했죠. 이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조국에 대한 독립심을 일깨웠어요.
 
 일각에서는 이상화를 ‘눈물의 열정 시인’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상화가 살았던 시절은 나라를 빼앗겨 눈물 없이는 살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나라 뺏긴 설움에 좌절하지 않고, 일제에 맞서는 내용의 시를 썼기에 이와 같이 불렸죠.

 일부 전문가들은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라는 작품을 두고 낭만주의적 색채가 짙다고 평가했습니다. 해당 작품이 이와 같이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낭만주의는 환상적이고 감정적인 것을 중시해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라는 작품에서 ‘임’을 의미하는 ‘마돈나’를 침실과 관련지어 표현했어요. 이러한 표현이 관능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 낭만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이상화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표현상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의 작품에는 나라 잃은 슬픔이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돼 있어요. 또한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는 정신이 강하게 담겨 있어요. 그래서 이상화의 작품을 감상하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이상화는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자 작가, 독립운동가, 문화평론가,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그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는 우리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늘 고뇌했어요. 그래서 시뿐만 아니라 평론과 소설을 통해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표현했죠. 또한 교남학교 교사로 재직 중 권투부를 만들어 학생들이 일제의 탄압에도 강인한 정신을 지니도록 일깨웠어요.

 이상화를 기억하기 위한 대구시의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매년 5월, 대구에서는 ‘상화문학제’를 개최하고 있어요. 또한 대구시는 달성공원과 두류공원에 이상화의 시를 새긴 비석을 세워 시민들에게 그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상화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상화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됐음에도 대구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어요. 그러니 독자 여러분 또한 이상화의 흔적을 통해 그의 높은 민족정신을 되새기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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