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장식은 범죄? 장식하는 것은 죄이기에 장식하는 자는 범죄자가 되는 것일까?
[학술] 장식은 범죄? 장식하는 것은 죄이기에 장식하는 자는 범죄자가 되는 것일까?
  • 남기철 교수(산업디자인학과)
  • 승인 2018.10.0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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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초반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는 그의 칼럼 <장식과 범죄>(Ornament und Verbrechen, 1908)에서 장식에 대하여 비판했다. “문화의 진화는 일상용품에서 장식을 멀리하는 것”, “…우리는 장식을 극복했고, 고민 끝에 장식 안 함을 결정했어. …성공이 우리를 기다린다”라면서 장식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이며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적을수록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독일 출신 건축가 미스 반 데로(Mies Van Der rohe, 1886~1969)의 기준에서도 장식은 불필요한 부가적인 요소로 치부되었으며,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고 하며 기능을 따르는 형태 속에 장식이 들어갈 틈도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20세기 서구의 모더니즘 디자인은 ‘탈 장식’을 지향하며 이것을 절대적인 신조로 삼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장식이 배제된, 그래서 개성이 없고 우리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무명성만을 강조한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결과물 속에서 살고 있다. 모더니즘의 합목적주의에 함몰되어 경제적이고 기능적인 형태를 위해 우리의 디자인에서 고유의 전통적 형태들이 희생되었다. 건축이나 제품의 스타일이, 또는 외형이 디자인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제품의 개념과 형식의 중요성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장식은 지금까지 배척당해 왔다. 여기서는 우리가 제품 외형의 형태에 대하여 다양성을 무시하고 어떠한 스타일만을 추구하여 왔는지 언급해 보려 한다.

 로스의 칼럼을 읽어보면 건축에서 전통적인 고유의 양식을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형태만을 추구하는 국제주의 양식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 로스가 <장식과 범죄>를 쓴 1908년, 오스트리아 빈의 상황은 벨 에포크(Belle Epoque)로 일컬어지는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가장 화려한 시대를 입증할 수 있을 만큼 미술, 음악, 문학과 같은 문화 활동이 왕성했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미국의 첨단기술을 사용한 진보적인 건축들을 보고 온 로스에게는 당시의 빈이 시대정신에 반하는 탐미주의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건축이나 제품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기능에서 벗어난 지나친 장식이나 과포장, 허세와 위장을 버리고 모두에게 공평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지식인으로서 로스가 했던 고민이 일견 타당하다고 이해되나, 이러한 생각이 과연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장식이 범죄라는 당시의 인식은 장식이 가지고 있는 경제성과 기능에서 기인한다. 당시 사람들은 장식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자의 시간과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재료의 낭비가 국가적인 손실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또한 장식이 무엇을 장식하고 있든, 이는 그것을 소유한 소유주의 취향, 전통 또는 그 시대의 문화적 상징이나 기호를 나타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권위, 허세와 같은 취향 이외의 부가적인 이미지도 준다는 것이다. 애초에 장식의 요소인 문양이나 패턴은 그것이 도형의 형상이든 자연을 묘사한 것이든 권위, 전통과 같은 의미의 전달을 목표로 태어난 기표이기에 모두에게 공평한 보편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기표는 종족과 종족을 구분시켜 주었으며 왕에게는 권위를 주었고 가문에는 전통과 자긍심을 주었다. 이와 같은 장식행위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행해져 온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기표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에도 장식은 시각적으로 재미와 흥미를 주는 형상 자체로, 혹은 더욱 추상화된 패턴이나 무늬로 발전되면서 그것이 적용된 바탕과 어울리며 사물 혹은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미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 20세기 초의 로스에게는 이러한 장식이 자격 없는 부르주아의 허세와 과소비로 보였을 것이며, 이것을 경제적 측면으로 평가하여 나라의 부강해짐을 막는 죄악으로 판단한 것이다.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시대는 풍요와 여유를 필요로 한다. 장식에 사용된 노동시간과 재료를 절약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또한 전 세계가 공유하는 공통의 양식으로서 장식이 없는 디자인만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정한 적도 없으며 실제도 그렇지도 않다. 인테리어나 패션디자인 분야를 보면 북유럽풍, 이탈리아식, 일본식 등 여러 양식이나 장식이 복합적으로 활용되며 우리의 주거환경을 풍성하고 감성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은 지나치게 말쑥하고 깔끔해서 과연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정서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의문이 든다.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r)의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 Hotel Tassel(Brussels)


 우리는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기가 변하는 시점에 제품디자인 실무를 했던 디자이너로서 당시의 신제품과 요즈음 출시되는 신제품을 비교해 보면 변화하는 속도를 실감하게 된다. 변화의 주범은 단연 디지털화이다. 당시 필자는 이러한 변화가 디자이너에게 불리할까를 고민했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원자기반 제품(atom based product)’에서 디지털시대의 ‘비트 기반 제품(bit based product)’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시대는 디자이너에게 컴퓨터라는 환상적인 도구를 선물했지만, 제품이라는 것의 개념은 물리적인 형태를 벗어나 ‘비촉각성(intangibility)’이 강조되면서 우리가 다루는 3차원 형태의 범주를 초월해버렸다. 덕분에 이제는 디자이너가 단지 외형을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보라든가 상황(situation), 서비스 등의 관념적 제품까지도 디자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디자인하여야 하는가이다. 과거 존재했던 타자기, 계산기, 카메라, 소형 오디오 등등 수많은 제품이 휴대용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컴퓨터까지 그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네모난 화면과 전원 버튼뿐이니, 무엇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외형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그 속에 담겨진 제품의 관습적 의미를 어떻게 시각화하여 작은 화면에 표현하는가에 달려있다. 즉 의미의 전달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만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화려하게 장식된 구텐베르크의 성경

 물건을 소유조차 하기 어려웠던 먼 과거의 시대엔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물건이어서 소유주의 애착이 과도한 장식으로 나타난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최초의 성경을 어마어마한 가격에 구매한 구매자들은 별도의 미술가를 고용하여 성경의 페이지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당시의 제품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는 장인들은 의자를 만들면서 화려한 장식을 부여했다. 조선 시대에 개발된 몇몇 무기들을 보면 기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장식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임금이나 사대부들이 쓰던 가구도 구석구석까지 세밀하게 장식되어 있다.

조선의 어좌
조선의 어좌

 각 민족별로 가지고 있는 전통양식이 존재한다. 우리에게 한복이 있듯이 서양 사람들에게도 민족별 고유의 복장이 있다. 건축, 가구, 의상, 식기, 전통 공예품 등에서 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양식은 디자인의 영역이 아니라 전통공예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제품디자이너에게 장식 혹은 장식적이라는 말은 사용자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제품의 차별화 포인트, 또는 미적 특징이나 덕목이 아니라 예술성, 창의성을 비하하는 부정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장식을 배제하며 심플한 디자인만이 디자인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여긴다. 전 시대를 통틀어 양식이 유행하듯이 모더니즘이라는 양식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유행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반성을 거쳐 이제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즉 옷에는 양복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복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상용품들은 실제 사용하는 시간보다 가만히 놓여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이러한 제품들은 저마다 그 제품이 놓이는 공간과 교감하며 그 속에 시각적 충만감을 준다. 사용자에게 기능성, 사용성뿐만 아니라 미적 경험을 줄 수 있는, 예술적 영감이 충만한 디자인을 해 보자. 사람들의 본능적 욕구에 의해서 꾸며지는 삶의 공간에 맞는 외형을 제품이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장식을 한다는 두려움을 없애고 기호와 상징의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미국의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 1925~ )는 ‘적을수록 지루하다(Less is Bore)’고 했다. 장식은 분명 디자인의 부차적인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장식이 주는 의미를 잘 활용하면 디자인이 주는 의미의 기쁨과 미적 경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장식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적절하게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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