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유내강(外柔內剛)이 절박한 시대: 극심한 경쟁사회와 ‘피해자의식’
[사설] 외유내강(外柔內剛)이 절박한 시대: 극심한 경쟁사회와 ‘피해자의식’
  • 영대신문
  • 승인 2018.09.0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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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은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생존전략이다.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을 기본 단위로 하는 모든 사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경쟁구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협동조차도 종종 경쟁의 한 방편이 된다. 사실 인간사회에서의 생존경쟁은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얼마간 물을 받지 못한 화분의 나무들을 보면, 신기하게도 모든 잎이 다 같이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 아니고 딱 몇 개의 잎만 완전히 누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머지 잎들은 여전히 온전히 푸르게 살아있다. 자연은 평등의식과 무관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자연도 그리고 그 일부인 인간사회도 경쟁에 의해 존속한다. 환경이 좋을 때는 강자와 약자가 공존할 수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 되면 약한 쪽은 필연적으로 제거되고 강한 쪽은 살아남는다. 물이 부족한 나무가 생존하기 위해 취하는 방식처럼. 인간이 사용하는 자원은 고갈상태에 근접하고 인간의 노동은 거의 필요치 않은 소위 AI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생존을 위한 인간사회에서의 경쟁은 더욱 극단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 자신을 강한 위치에 세우고자 하는 경쟁심은 자신이 약한 쪽에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 불안감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강한 쪽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생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포로 확대되면 스스로의 노력은 포기하는 대신 강한 쪽에 대한 혹은 사회 전체에 대한 막연한 억울함과 부당함의 의식만 커질 수 있다.

 이미 몇 년 전 ‘피해자의식의 진짜 피해자’(The Real Victims of Victimhood)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즈에 기고된 논평에서 ‘피해자의식’이라는 문화적인 현상을 우려한 바 있다. ‘피해자의식’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어도 괜찮다는 부정적인 심리를 작동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의식이 가득한 사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해결이 어려워지고 시민의식이 저하된다고 한다. 이 논평의 기고자 Arthur Brooks는 “피해자의 이기적으로 행동할 자격”(Victim Entitlement to Behave Selfishly)이라는 스탠포드대학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억울한 의식을 가진 이들이 좀 더 비협조적이며 자신의 권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실험 후 책상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거나 펜을 훔쳐가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도 피해자의식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책임보다 권리를 앞세우고 줄 것보다 받을 것을 먼저 헤아리는 피해자의식에 사로잡힌 사회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존을 위한 경쟁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당당한 경쟁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외적인 강함보다는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의 책임과 의무에 성실할 수 있는, 내공이 강한 경쟁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득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자세가 절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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