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름’을 발견하기
[사설] ‘다름’을 발견하기
  • 영대신문
  • 승인 2018.06.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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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서울 성북동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했다. 원로 학자 황현산과 후배 시인들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두 시간여 정도 시와 번역, 비평에 대한 깊은 대화가 오갔다. 추운 밤, 문학의 세계는 사람을 저 깊은 생각의 바다로 침잠시키는 힘이 있었다. 한 참석자의 질문이 기억난다. ‘인공지능이 창작하는 시대에 시인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요즘같은 때에 그리 날카롭다고 할만한 질문은 아니었으나, 대답은 무척 진지했다. 원로 학자는 ‘죽음’이라는 화두로 답을 시작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의식하는 슬픈 존재라는 점이 무엇인가를 쓰게 만들었다고 했다. 생의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두려움과 슬픔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다른 점이니, 인간에 의해 시가 쓰이고, 노래가 불리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창작행위라고 답했다. 기억이 희미해져 그때 내 가슴을 울린 정확한 표현을 여기에 옮기지 못하지만, ‘다름’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되뇌게 된다.

 2000년대에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종이책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것이 관련 직업인들의 낭만적인 바람으로만 보였던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디지털과 종이는 대결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종이책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며 종이책의 가치는 여전히 고유하다. 독립출판과 작은 책방의 활약을 보면서 책을 만들기 위한 욕망은 끊이질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의 첫 구절, ‘國之語音 異乎中國(국지어음 이호중국)’은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알고, 보다 편리한 문자생활을 위해서 새로운 스물여덟 글자,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다. 한글의 과학적 체계는 두말할 것 없이 주목할 일이지만, 다름(異)의 철학은 그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씨앗이다. 이처럼 창작의 출발은 ‘다름’을 인식하는 데 있다.

 또한, 창작은 ‘다름’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전과 다른 형식, 이전과 다른 기능으로 그 차이를 선보임으로써 가치를 만들어낸다. 얼마 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전시는 한국 행위미술 / 아방가르드 미술의 50년을 정리한 행사였다. 전시에 참여하고 기록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은 치열하게 ‘다름’의 정신을 강조하며 기성 미술계의 관습과 권위를 흔들어놓은 결과물이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고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람을 창의적이라고 부르고 그러한 창의성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또한 중요하게 여겨진다. 교육의 창의성은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부터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름’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능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자신의 능력을 살펴보는 데 필요한 것은 주변을 관찰하며 타인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자기 안에 갇혀있으면, 정작 자신을 발견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면에서 단체 활동과 여행은 창의적 교육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여름! 어디론가 떠나자.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어떻게 다른지 그 ‘다름'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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