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로를 거닌 사람] 랩에 자신의 삶을 담다
[천마로를 거닌 사람] 랩에 자신의 삶을 담다
  • 임시은 수습기자, 정성진 수습기자
  • 승인 2018.06.0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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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인스토리 포토
사진제공: 인스토리 포토

 

 우리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래퍼가 된 유재관 동문(경영학과07). 그는 현재 ‘JISIM’이란 랩 네임으로 ‘Sim City’, ‘Urban Flavor’, ‘Stay Free Homeboys’ 등의 여러 앨범을 내며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에 유재관 동문을 만나 래퍼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래퍼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랩 네임인 ‘JISIM’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머리를 짧게 깎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노지심’이란 프로레슬링 선수와 닮았다며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에요. 제가 힙합을 시작할 때 별명을 랩 네임으로 정하는 래퍼가 많았어요. 그래서 ‘JISIM’을 랩 네임으로 정했죠.

 래퍼가 되기 전 교사란 꿈을 꿨다고 들었습니다. 교사라는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주로 자신의 아들을 자랑하는 고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어머니는 대화에 어울리지 못했어요. 그때 저희 담임선생님께서 “재관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혼자서도 잘하는 학생입니다”라며 다른 학부모들 앞에서 저희 어머니의 기를 살려줬죠. 이후로 담임선생님을 존경했고 선생님같이 멋진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그렇다면 그 꿈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를 늦게 시작한 만큼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특히 고3 때는 점심도 거르고 공부하다 기절하기도 했어요. 안타깝게 교육대학 진학의 꿈이 좌절됐고 부모님의 권유로 우리 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어요. 저의 목표가 아닌 대학교에 입학했기에 괜히 학교가 미웠지만, 학교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교심이 생겼어요.

지난 28일, 언론출판문화원 세미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유재관 동문의 모습
지난 28일, 언론출판문화원 세미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유재관 동문의 모습

 

 래퍼란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생 때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한 흑인 래퍼의 뮤직비디오를 봤어요. 당시 발라드만 주로 들었기에 힙합은 신선했고 특히 래퍼가 앨범 속 노래의 작사, 작곡을 모두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이후 취미로 가사를 쓰고 랩을 했죠.
 그러다가 2013년에 당시 여자친구의 권유로 ‘쇼미더머니2’ 예선에 나가게 됐어요. 여기서 부산 지역 특별 예선 1등을 차지해 본선에 진출하게 됐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래퍼 더블케이가 “본선 결과에 상관없이 본인의 음악을 시작해봐라”란 격려의 말을 했어요.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래퍼란 꿈을 갖게 됐어요.

 래퍼란 꿈을 갖기 전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은 등의 문제로 걱정을 하진 않으셨나요?

 당연히 걱정했죠. 하지만 래퍼라서 걱정을 한 것은 아니에요. 주변에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많은 걱정을 갖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어차피 똑같이 걱정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랩 가사를 잘 쓰기 위해 하신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을 많이 읽었어요. 랩 가사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워야 하고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많이 읽은 경험이 제가 추구하는 랩 가사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꿈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은 없으셨나요?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꿈이 언제까지 행복을 줄까?’란 고민에 빠져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힙합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다른 일에 집중할 자신이 없어 포기하지 않았죠.

 래퍼란 꿈을 이루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래퍼 더블케이와 딥플로우에요 더블케이는 ‘쇼미더머니2’에서 만나 제 꿈의 방향을 제시해 줬고 딥플로우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만 활동하겠다는 제 신념을 지지했어요.

 본인이 했던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가요?

 ‘URBAN FLAVOR’이란 앨범 발매 후 마일로와 함께 했던 쇼케이스였어요. 대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힙합 트레인’이란 공연과 날짜가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저희 공연을 보러 와주셔서 감격스러웠어요.

 앨범을 녹음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URBAN FLAVOR’ 앨범을 녹음할 당시 환경이 매우 열악했어요. 엄청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보일러가 안돼 녹음을 하다가 손발이 모두 동상에 걸렸어요. 힘든 환경 속에서도 녹음을 위해 몇 시간 동안 버텼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본인이 작업했던 앨범 중 가장 아끼는 앨범은 무엇인가요?

 클린트 웨스트우드의 ‘Social Music’이란 앨범이에요. 이 앨범을 녹음할 당시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모두 앨범에 담았어요, 또한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프로듀서와 작업해서 좋았어요.

 

 힙합 장르 중에서 선호하시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붐뱁이에요. 다른 분야와 달리 정확한 타이밍에 터지는 리듬이 마음에 들어요.

 존경하는 래퍼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래퍼 빈지노예요. 저는 노래에서 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래퍼 빈지노의 가사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와요. 가사를 잘 쓰는 것을 꼭 본받고 싶어요.

 우리나라 힙합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 등 힙합 프로그램이 생기며 우리나라에서 힙합이 대중화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람들은 래퍼를 허세 부리고 돈 자랑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해요. 대중과 래퍼 사이의 문화 이해도 차이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구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명한 외국 래퍼들이 자기 고향을 대표하며 활동하는 모습이 멋졌어요. 저도 대구를 대표하는 래퍼가 되고자 대구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쉘터라는 바이닐 펍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바이닐 펍은 제가 LP판을 선택해 손님들에게 음악을 틀어주는 가게에요. 예전부터 LP판을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었는데 제가 아는 좋은 음악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이것이 계기가 돼 바이닐 펍을 운영하게 됐어요.

 자신의 꿈을 지탱해준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의 피드백이에요. ‘이번 노래 정말 좋다’란 한마디의 말이 원동력이 돼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마지막으로 래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으면 분명 사람들이 알아줄 거예요. 특히 힙합은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재능만 있다면 누구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약 재능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을 추천해요.
 그리고 꿈을 크게 가지세요. 원래 저의 꿈은 소박하게 앨범 발매와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꿈을 생각보다 빨리 이루고 나니 목표가 사라져 슬럼프를 겪었어요. 꿈을 크게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길 바라요.

 *붐뱁: 90년대 중심으로 유행한 힙합. 드럼 소리가 마치 '붐', '뱁'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BPM은 90대로 4/4정박을 통해 포인트를 준다.

독자들의 ‘나도! 나도!’

 랩을 하는 래퍼와 비트를 만드는 프로듀서 중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랩을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프로듀싱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명확하게 무엇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긴 어려워요. 굳이 대답하자면 비트를 잘 만들지는 못해 랩을 하는 래퍼가 되고 싶어요.

 ‘Sim City’ 앨범에 수록된 ‘공회전’이란 노래를 들으니 슬럼프를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노래를 녹음할 당시 슬럼프를 겪었나요?

 맞아요. 당시 많은 고민으로 방황했어요. 또한 이전 앨범에서 음악적 영감을 모두 쏟았기에 다음 앨범 준비가 막막하게만 느껴졌어요. 그때의 심정이 녹은 곡이에요.

 함께 곡 작업을 하고 싶은 래퍼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래퍼 빈지노와 함께 곡 작업하고 싶어요. 만약 함께 작업한다면 엄청 감격스러울 거예요.

 래퍼란 꿈을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으셨나요?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기에 부모님을 설득했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할 의지가 없다면 그 꿈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유재관 동문을 만나기에 앞서, 설레면서도 걱정됐다. 왜냐하면 래퍼를 생각하면 거칠고 강한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유재관 동문을 만났을 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는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래퍼는 강하게 말하고 예의가 부족한 것이란 선입견을 가진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유재관 동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답변은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기에 부모님을 설득했다”라는 말이다. 이 답변에서 그의 꿈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나의 꿈에 대해 얼마만큼의 열정을 갖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독자들도 스스로의 꿈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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