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기록을 통해 천마의 숨은 역사 찾아가기
[학술] 기록을 통해 천마의 숨은 역사 찾아가기
  • 심상순 대학기록물관리팀장
  • 승인 2018.05.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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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은 1947년에 설립한 대구대학과 1950년에 설립한 청구대학이 1967년에 발전적으로 통합하여 올해로 개교 71년이 되었다.

 중앙도서관 대학기록물관리팀에서는 2017년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우리 대학 개교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학의 70년 역사를 돌아보고, 세계 일류 대학으로 발돋움하려는 천마인들의 애교심과 자긍심을 공유하고자 중앙도서관 1층 로비에서 『기록으로 만나는 영남대학교 70년』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런데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필자가 느낀 점은 대학의 역사는 어느 특정부서나 특정인이 아닌 천마인 전체가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동안 대학과 관련 부서에서는 대학의 역사에 대해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천마인들에게 대학의 역사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하지 않아 대다수 천마인들은 단편적인 사실만 구전 또는 기록을 통해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글은 『기록으로 만나는 영남대학교 70년』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 학교의 행정기록물, 영대신문, 《영남대학교 50년사》 등 대학의 공식적인 기록물을 통해 천마의 숨은 역사를 발굴해내서 천마인들에게 알림으로써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시도하였다.

 천마상은 어떻게 박물관에 있게 되었을까=박물관 앞에는 우리대학의 상징인 천마상이 놓여있다. 필자는 졸업앨범과 홍보영상에 등장하는 천마상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2015년 11월초 한통의 민원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분은 오늘의 천마상을 있게 한 기부자의 비서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이제는 천마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어 대학기록물관리팀으로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아울러 그 분은 우리 대학 박물관 옆에 소재하고 있는 천마상은 개교 4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고 신재휴 동문의 기부로 최초 상경대학과 약학대학 사이 천마로에 설치되고 있다가 미대 학생회의 반대로 1988년 11월 지금의 박물관 위치로 옮겨가 준공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필자는 이후 1988년 8월 24일자 영대신문 기사를 통해 대학본부에서 학생회와 협의하여 새로운 천마상을 건립하기로 하였으나 건립기금 문제로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영남대학교 50년사》에는 1969년 4월 학교상징물 현상공모에서 천마가 선정된 이래 천마는 민족의 대학이라는 건학이념을 토대로 신라 화랑의 유서가 깃든 압량벌에 터전을 잡은 우리 학교와 화랑들의 기상이 잘 어울리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상징인 심볼상은 경산캠퍼스 건립 조감도에만 나타나 있을 뿐 구체화시킨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1978년 6월 28일 영대신문 기사를 보면 천마상을 건립하기 위해 회화과의 여학생들이 주도하여 티셔츠 판매를 통한 기금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천마상이 정문진입로에서 본부로 향하는 첫 잔디밭에 세워질 예정이라고 보도하였지만 건립기금의 부족으로 천마상 건립은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천마상 건립이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1987년 3월 영남대학교 7대 총장인 김기택 총장의 제안과 고 신재휴 재경동창회장의 기부금 쾌척으로 동년 11월에 천마상 건립공사를 착공하였다. 그러나 영대신문 1988년 8월 24일 보도와 같이 천마상 건립에 우리 대학의 미대교수와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침내 1988년 11월에 천마상은 현재의 박물관 옆으로 옮겨져 준공하게 된다.

 

 개교 40주년 기념사업으로 건립된 박물관의 천마상은 부조형태로 전면에서만 감상할 수 있어 다소 아쉬움이 있다. 다가오는 개교 80주년에는 경산캠퍼스 건립당시 계획하였던 심볼상을 천마로 어디에서든 감상할 수 있도록 ‘비상하는 천마상’을 우리 대학 교직원, 학생, 22만 동문들의 힘을 모아 새롭게 건립함으로써 천마의 기개가 다시 한번 웅비하기를 기대해 본다.

 중앙도서관에 있는 〈낙동강천리도〉, 통문관 액자와 과학도서관에 있는 〈근학도〉는 어떤 관계인가?=필자는 우리 대학에 근무한지 25여년이 다 되어 가지만 본격적으로 우리 대학의 역사와 기록에 관심을 둔 지는 불과 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는 『기록으로 만나는 영남대학교 70년』 전시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야기가 있는 기록’을 우리 구성원들에게 알려 주면 보다 쉽고 오래 우리 대학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필자가 근무하는 중앙도서관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기록물들이 있을까 조사하던 끝에 중앙도서관 지하1층 제2열람실에 걸려 있던 〈낙동강천리도〉와 1층 디지털자료실 입구에 있던 통문관 기증액자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2017년 9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영대신문과 《영남대학교 50년사》, 대학의 행정기록물 등을 조사하였다. 안타깝게도 대학기록물관리팀에 보유중인 행정기록물 중에서는 학처장회의 요지통보에 나타난 〈낙동강천리도〉 설치에 대한 간략한 기록 외에는 어떤 사실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반면에 영대신문 기사를 통해 〈낙동강천리도〉와 통문관 액자는 서로 연관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69년 12월 5일 영대신문에서는 이선근총장의 강력한 의지로 장서확충 계획을 세우고, 국내 최대 고서적상인 통문관을 통해 다량의 고문헌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이 때 통문관을 통해 구입한 고문헌 중에서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가 2008년 12월 보물 제1594-2호로 지정됐으며,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10권 3책이 2017년 6월 보물 제1939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모두 통문관에서 구입한 고지도 및 고서들 중 일부 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볼 때 우리 대학에서는 1970년 장서확충계획을 수립하여 통문관에서 다량의 고문헌을 구입하게 되고, 통문관에서는 답례의 의미로 광개토대왕비를 집자하여 우리나라에 흩어져 있는 고문헌을 모으는 일이 대학도서관과 통문관의 역할임을 기록한 액자를 제작하여 우리 도서관에 기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또한 영대신문을 통해 이선근 2대 총장이 개교 3주년 기념사업으로 세 가지 사업을 추진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 세 가지 사업은 1970년 4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대명동 캠퍼스 도서관에서 개최한 「고활자본·고지도 전시회」, 〈낙동강천리도〉 전시회, 〈근학도〉 전시회이다.

 

 <낙동강천리도〉는 우리 대학의 교가를 작사한 노산 이은상 선생이 글을 짓고, 국필이라 불리우는 일중 김충현 선생이 글을 쓰고, 한국화의 대가인 유산 민경갑 화백이 그림을 그린 우리 대학의 창학정신을 그대로 표현한 문화재급 한국화이다.

 최근에 대학에서는 〈낙동강천리도〉가 제작된 지 50여년이 도래함에 따라 〈낙동강천리도〉 복원 및 복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하게 되면 복원된 〈낙동강천리도〉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줄 것이며, 아울러 천마아트센터에서는 실물과 동일한 〈낙동강천리도〉를 감상할 기회가 천마인들과 외부인들에게 제공될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선근 총장이 실행한 세 가지 기념사업 중에서 유독 장석수 교수가 그린 학교의 상징벽화인 〈근학도〉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근학도〉는 앵포르멜 회화의 선구자격인 고 장석수 교수가 팔공산, 백두산을 배경으로 조상들의 얼이 서린 고목 아래서 천마인들이 대화를 통해 진리탐구와 인격수양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은 그림이다. 필자는 영대신문에서 ‘상징벽화’로 보도한 〈근학도〉를 고정된 벽에 그린 그림일 것으로 단정하고 그림의 행방 추적은 포기하였다. 그러던 차에 우연하게도 2017년 12월말 도서관장님과 함께 과학도서관을 방문하면서 2층 입구에 걸려져 있던 〈근학도〉를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학교에서 근무한 지 25여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야 이 그림이 내 눈에 들어오다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처럼 〈낙동강천리도〉와 〈근학도〉, 그리고 통문관 기증액자의 관계에 대한 의문점은 비로소 한 순간에 해소되었다.

 1970년 4월 세 개의 전시물이 처음에는 대명동 캠퍼스 도서관에 전시되었지만 현재는 중앙도서관과 과학도서관으로 나누어져 도서관을 방문하는 학생들과 천마인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며 50여년 세월을 간직한 우리 대학의 기록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심지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의 역사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천마인 모두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금 이 순간 우리 대학의 역사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기록 수집을 통해 계속 유지, 보완, 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설립된 대학기록물관리팀에서는 대학기록물의 수집, 정리, 전시, 홍보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천마역사자료 수집공모전』, 각종 『기록 전시회』 등을 통해 천마공동체와 꾸준히 대화하며 소통할 예정이므로 천마 역사 찾기에 천마인 여러분들의 꾸준한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