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 김달호 기자
  • 승인 2018.05.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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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철학과)가 쓴 「피로사회」는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자신을 착취함에 따라 피로와 탈진 증세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우린 특정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쉽게 피로감을 느끼며, 적정한 기준을 넘는다면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사회는 이 어려움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고, 일을 한만큼 삶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일에 지친 사람들: ‘번아웃 증후군’

 지난해 8월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가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노동자들이 평균 2,069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치로, OECD 평균인 1,072시간보다 약 2배 많다. 그러나 지난 6일 OECD가 발표한 ‘2017년 시간당 노동생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은 약 34달러로 OECD 평균인 약 47달러보다 낮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노동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높지 못한 이유로 누적된 피로를 꼽았다. 즉 우리 사회가 과도한 업무로 지쳤음을 나타낸다.

 꺼져버린 성냥 같이='번아웃 증후군’이란 특정 업무에 열중해 정신적·신체적 피로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전문가들은 학업이나 직장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번아웃 증후군의 주된 원인이라 주장했다. 윤현철 고려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번아웃 증후군은 많은 업무로 개인의 시간 여유가 줄어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증상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10대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번아웃지수’를 조사한 결과 20대~40대의 평균 번아웃 지수가 75점 중에서 40점을 넘어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가 46.5점으로, 30대(43.7점)와 40대(42.8점)에 비해 높았다. 실제로 우리 대학교 학생 303명을 대상으로 ‘번아웃지수’를 조사한 결과 평균 43.1점이었으며, 응답한 학생의 97.6%(296명)가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또한 심각한 수준의 번아웃 증후군(60점 이상)을 겪는 학생도 8.3%(25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업으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지적했다. 이상민 고려대 교수(교육학과)는 논문 ‘교육에서의 소진에 관한 이론적 고찰’에서 학생들이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것을 ‘학습소진’이라 정의했다. 일부는 학습소진이 청소년기에 겪은 부모들의 간섭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최성구 일동제약 중앙연구소장은 “부모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던 청소년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스스로 학업을 계획하거나 목표를 세우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학업스트레스를 받아 학습소진을 겪는다”고 말했다.

 번아웃을 느끼고 있나요?=번아웃 증후군은 무기력증, 잦은 분노와 같은 정신적 증상과 두통, 속쓰림, 복통 등의 신체적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또한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윤현철 교수는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증상을 겪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등 악화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한편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 증상을 혼동해 잘못된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윤현철 교수는 “우울증은 보통 2주 이상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는데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전문의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인 휴식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윤현철 교수는 “평소에 틈틈이 여유를 갖고 편안한 대화 등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는 청년층의 학업소진을 예방하기 위해 청소년기에 이뤄지는 교육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성구 소장은 “청소년기 자녀에 대한 부모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자율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통해 청년층의 학습소진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저울 위에 놓인 일과 삶

 과거에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삶보다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일을 함에 따라 점차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후 사회가 발전하면서 일과 더불어 삶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에 따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사회도 여러 정책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워라밸을 맞추자=‘워라밸’은 워크라이프밸런스(Work-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한다. 이는 청년세대가 일만큼 삶을 중시함에 따라 나타났다. 이정미 대구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거 산업화 시대와 달리 일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청년층이 늘어나 워라밸이 사회적으로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원섭 연세대 교수(교육학과)의 책 「다시, 장인이다」에 따르면 일과 삶의 터가 같았던 과거와 달리 현대는 일과 삶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분리돼 있어 두 영역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 붕괴돼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WLB연구소가 직장인 1,007명으로 대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붕괴됨에 따른 문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졸림과 극심한 피로를 느끼는 번아웃 증후군과 건강악화, 가정소홀 등의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전문가들은 워라밸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통해 노동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한국개발연구원이 발간한「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기업이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함에 따라 노동생산성이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이정미 부연구위원은 개인의 노동 분업을 통해 워라밸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정미 부연구위원은 “한 가지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눔으로써 개인의 노동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워라밸을 맞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녁이 있는 삶=최근 우리 사회는 번아웃 증후군을 방지하기 위해 워라밸을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법정 근로시간 개정을 통해 일상생활 속 삶의 비중을 높이고자 한다. 지난 2월 정부는 기존 주 68시간이었던 법정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감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우선 실시한 뒤 2022년까지 모든 사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곽철홍 근로기준혁신팀 담당자는 “노동자가 워라밸을 맞출 수 있도록 정부가 많은 도움을 주겠다”고 전했다.

 지자체도 워라밸을 맞추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경상북도는 일만큼 삶을 누릴 시간을 보장하면서, 업무를 분업화해 일자리를 늘릴 방안으로 ‘주 4일 근무제’를 고안했다. 이는 지난해 9월부터 5개 공공기관에서 22명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운영됐으며, 12월부터 일부 민간 기업으로도 확대했다. 이근호 경상북도 예산담당과 담당자는 “이 정책으로 노동자의 워라밸을 맞추고 성공적인 일자리 창출도 이뤘기에 앞으로 더 많은 일자리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 워라밸을 맞추고 있다. 신세계는 올해 1월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모든 계열사에 적용하고,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출·퇴근 시간에 자율성을 줬다. 또한 퇴근 시간이 임박하면 PC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추가 근로를 막았다. 이외에도 흡연실 폐쇄, 회의시간 단축 등을 통해 불필요한 업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 증상들

 [심각한 무기력증] 
 

 

[요통, 두통 등의 증상]
 

 

[잦은 분노]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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