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로!
번역의 세계로!
  • 김채은 기자, 윤신원 기자
  • 승인 2018.05.2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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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이란 ‘한 언어로 구성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번역 작품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번역 분야에 대한 관심 및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번역의 역할과 번역 분야의 실태에 대해 짚어봤다.

소통하는 세상

 문학작품 및 영화 등의 콘텐츠 분야에서 여러 나라 간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번역의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다. 번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에 번역의 역할과 오역 논란이 생기는 이유 등을 살펴봤다.

 언어의 벽을 넘다=작품의 원작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원어’ 또는 ‘출발어’, 해외로 수출된 번역본의 언어를 ‘번역어’ 또는 ‘도착어’라고 지칭한다. 우리는 번역을 통해 해외의 여러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그 속에 담긴 문화를 알 수 있다. 이처럼 번역은 나라 간의 활발한 문화 교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고태경 문화평론가는 “다양한 번역 작품을 통해 여러 나라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전했다.

 또한 번역 작품은 그 원작의 예술성을 해외에 알리기도 한다. 지난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를 쓴 한강 작가와 그의 소설을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는 번역이 ‘채식주의자’의 문학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교보문고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집계한 ‘소설 누적 판매량’에서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일각에서는 해당 소설의 번역본이 원작의 작품성을 충실히 반영했기에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진현 교수(중국언어문화학부)는 “원작에 담긴 정서를 잘 살린 번역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며, 독자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의미를 살리다=한편 번역은 창조적 작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외의 작품을 번역할 때, 해당 국가와의 문화 및 언어적 차이로 인해 완전한 직역이 이뤄지기 어려운 편이다. 이에 번역가는 번역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정서 및 언어적 특성을 고려해 원작을 의역함으로써, 원작과는 다른 분위기의 번역본을 만들 수 있다. 원문의 내용을 잘 살린 범위 내에서 의역함으로써, 원작의 작품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의역을 ‘초월번역’이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설 ‘햄릿’ 이다. 원작 소설 속 인물의 대사 중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라는 말이 있다. 이를 직역할 경우,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에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표현했다. 이는 ‘to be’를 함축적 의미인 ‘삶’으로 의역한 것이다. 김번 한림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번역 과정에서 원작 속의 내용을 완전히 직역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그럼에도 원작에서 전하고자 하는 작품의 내용 및 정서를 살려내는 것이 번역가의 과업”이라고 말했다.

 번역은 어려워=번역 작품에 대한 ‘오역 논란’은 번역자가 원작의 내용을 적절하게 직역 및 의역 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번역 과정에서 원어를 직역하는 것에만 의존한다면 작품의 상황 및 문맥이 어색하게 전달돼, 콘텐츠의 수용자들이 작품 속 내용을 오해할 수 있다. 영화 ‘K-19:위도우메이커’에서 ‘destroyer’라는 대사가 극 중의 상황에 벗어난 의미로 번역돼 논란이 있었다. 극의 상황을 고려할 경우, ‘destroyer’은 ‘구축함’을 의미했으나 ‘파괴자’라는 뜻으로 직역된 것이다. 이에 극 중 ‘미국의 구축함이 접근하고 있습니다’라는 대사가 ‘파괴자 미국이 접근하고 있습니다’로 오역됐다. 반면 의역하는 것에만 의존해도 원작의 내용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대사 중 ‘Water is wet’이 자막에서 ‘물난리’로 표현됐다. 하지만 해당 대사는 ‘당연한 사실이다’라는 의미의 관용어임이 알려지면서, 관객들은 의역이 원작의 내용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김번 교수는 “번역가는 직역과 의역 중 어떤 번역 방법이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소설가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은 자신의 작품이 오역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번역가들이 본인의 작품을 번역할 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어휘를 알려주는 번역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여러 나라 간의 콘텐츠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우리는 해외 문화 콘텐츠의 번역본을, 외국은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의 번역본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에 번역가들은 책임의식을 갖고 콘텐츠를 번역해야 하는 한편, 우리나라는 번역 분야의 지원이 미흡해 번역가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실정이다. 이에 번역 분야의 활성화를 위한 대중들의 움직임 및 지원 실태에 대해 짚어봤다.

 대중들의 움직임=박지훈 번역가는 지난 25일 개봉된 영화 ‘어벤져스3: 인피니티 워’ 중 “It’s the end game”이라는 대사를 “가망이 없다”로 번역했다. 이에 일부 대중들은 영화 줄거리의 흐름 상 해당 자막이 “최종 단계에 왔다”로 번역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중들은 하나의 번역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콘텐츠의 번역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평가하기도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중들의 움직임이 올바른 번역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평가했다. 김택규 번역가는 “번역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번역가가 보다  성실한 번역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국민청원이 게시됐다. 해당 청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학계의 인식이 미비하기에 번역 작품을 학문적 업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에서 연구 번역 결과물을 석·박사 논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상익 우석대 교수(역사교육과)는 “번역위원회 혹은 국립번역원을 설립함으로써 번역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의 번역 콘텐츠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번역, 그 현실은?=지난 2013년에 발표된 ‘외주출판노동자 노동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 사업단이 428명의 번역가 및 외주편집자 등을 대상으로 ‘그들의 사회적 권리 및 생활상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안정적으로 업무를 제공받는 거래처가 ‘없다’는 경우가 40.2%(172명)였으며, 직업 소득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경우가 85.3%(365명)였다. 이에 많은 번역가들이 번역료로만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에, 번역을 전업으로 삼는 경우가 미비한 실정이다. 조재룡 고려대 교수(불어불문학과)는 “번역에 대한 보수가 적고 *인세가 보장되지 않는 등 번역가의 처우는 매우 열악한 편”이라고 말했다.

 한편 번역계의 경우, 대중들의 독서율이 저하돼 출판계의 자본 규모가 감소함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한다. 지난 2008년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2007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성인 1,000명 중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이 76.7%(767명)였으며, 이후 매년 독서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발표된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6,000명 중 지난 1년간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59.9%(3,594명)였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매년 연간 독서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두고 이는 번역 및 번역가에 대한 지원이 미흡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평가했다. 김택규 번역가는 “사람들의 독서량이 점점 줄어들어 출판계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출판계 자본의 규모 또한 작아져 번역가들에 대한 보수 및 지원을 확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번역 분야의 실정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 및 정부에서 번역 작품의 출판을 일부 지원하고 번역가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지원 사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익 교수는 “번역물의 출간 및 번역가에 대한 생계 지원 사업은 번역 콘텐츠를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세: 저작물의 출판·발매를 조건으로 발행자(출판사)로부터 저작자 또는 저작권자에게 지급되는 저작권 사용료.

이 번역본을 추천합니다!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저, 이윤기 역) 

 

 소설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트 에코 작가가 쓴 소설이며, 이윤기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겨 국내에서 발간됐다. 이는 중세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이다. 한국어판 ‘장미의 이름’은 영문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번역한 작품이다.

 김택규 번역가는 소설 ‘장미의 이름’을 ‘학술·문학적 가치가 있는 번역’이라고 평가했다. 김택규 번역가는 “이 책은 번역서로도, 문학 작품으로서도 훌륭할뿐더러 서양 중세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며 해당 책을 추천했다.

『서유기』 (오승은 저,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연구회 역)
『서유기』 (오승은 저,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연구회 역)

 

 ‘서유기’는 오승은 작가의 소설로,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연구회가 우리말로 번역한 작품이다. 현장삼장과 손오공이 황제의 명에 따라 불경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과정을 담은 모험기이다. 서유기는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로 꼽힌다.

 박명진 교수(중국언어문화학부)는 “서유기와 같은 중국의 고전 작품은 문장이 길어 번역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며 “인물의 성격 및 작품의 특징이 원작의 분위기대로 잘 표현됐다”고 추천했다.

 *기서: 내용이 기이한 책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저, 윤지관 역)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저, 윤지관 역)

 

  ‘이성과 감성’은 1811년 제인 오스틴이 본인의 습작인 ‘엘리너와 메리앤’을 개작해 출간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젠트리 계급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윤지관 번역가가 해당 작품을 번역했다.

 김재오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이를 ‘원작의 특성을 잘 살린 번역’이라고 평가했다. 김재오 교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는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극 중 상황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대사가 종종 있다. 번역본은 이러한 원작의 특성을 잘 살려 독자들이 작품을 읽는 데 도움을 준다”고 전했다.

 *젠트리: 영국에서 중세 후기에 생긴 중산적 토지 소유자층을 이르는 말

사진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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