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반도에서 미군의 역할과 지역 주민의 권리
[사설]한반도에서 미군의 역할과 지역 주민의 권리
  • 편집국
  • 승인 2007.04.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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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미군 기지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우리들에게 꽤 익숙한 편이다. 연 2천 2백건에 달하는 주한미군범죄 같은 “사회” 문제부터 유사시 군 작전권 같은 “민족” 문제, 그리고 미군부대 철수 같은, 한국에서는 거의 “체제위협적인 극좌파적” 발상에 이르기까지, 광주항쟁이 있었던 지난 1980년 이후 한반도 내의 미군부대의 존재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한반도를 지배해온 냉전 체제를 배경으로 한 군사적인 안보 문제, 거기에다 대외의존적인(특히 미국의존적인) 한국의 경제 안보 문제까지 맞물려, 한국 내의 미군부대 문제는 대중적인 인식의 확산을 가져오지 못해온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부대 기지 이전(확장) 문제를 놓고 현재 평택시 대추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민 및 사회단체들과 군.경의 충돌은 우리 사회에서 미군부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를 포함하여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특히 이번 미군기지 이전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주둔미군의 재배치(GPR)라고 하는 미국의 거시적인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한국 정부의 주장처럼, 수도 서울의 용산기지를 단순히 한국 측 요청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두천, 의정부를 중심으로 하여 경기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2사단의 병력을 대폭 감축하고 대신 미사일과 전투기를 중심으로 한 신속기동군으로 전환시켜 평택시 대추리에 주둔하고 있는 캠프 험프리 부대로 확장이전 시키겠다는 GPR 계획의 일환에 따라 이번 일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 양국 정부의 합의문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계획의 목표는 신속기동군화된 미군을 활용하여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 정치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은 단순히 한미상호방위 조약에 따른 한반도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세력은 누구든지 우선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잠재적으로 또 가까운 미래에 미군은 중국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그 근본적인 의미가 바뀌게 된다. 한반도는 미 제국주의 패권전략의 전초기지로 전락하게 되며, 정부 당국자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한반도의 안보는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질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이번 사태가 주는 의미는 한반도 여러 지역의 주민들과 국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도대체 경제 안보라는 이름의 국익의 실체가 무엇이길래 대추리에 사는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던 터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경제 안보란 결국 미국에 무언가 수출할 수 있는 기업들과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관리들과 일부 지식권력자들(전문가들)의 안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사람답게 산다는 것과 이익을 남긴다는 것이 결코 일치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서 알려졌듯이, 대추리의 농민들은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공군 기지 건설을 위해서 자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난 일이 있고, 다시 1952년 현재의 미군부대 주둔을 위해서 한 차례 더 자신들의 터전에서 무일푼으로 쫓겨난 가슴 아픈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다. 미군들한테 쫓겨난 농민들은 당시 갯벌이었던 땅을 지게와 가래로 15년간 간척해서 오늘날의 옥토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몸 누일 장소를 발견하지 못한 숱한 노약자들이 희생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익이라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존엄성을 포기하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미군기지이전 문제를 주민투표를 통해서 해결한 예가 있다. 근대국가의 폭력성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려면 적어도 주민들의 의사와 생각을 묻는 주민투표제도의 도입과 정착이 참여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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