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직접 체험하는 '버스 나들이'
느림의 미학, 직접 체험하는 '버스 나들이'
  • 남경순 객원기자
  • 승인 2007.04.04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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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주변의 소중함을 찾아 떠나는 버스 여행 ♬

몇 일간의 준비 끝에 가곤했던 서울 나들이가 하루만의 왕복 가능한 외출로 탈바꿈하고, ‘금요일에 귀가해 월요일에 출근 한다’는 주말부부의 금귀월래(金歸月來) 생활양식이 가능하게 된 것은 모두 고속철도(KTX)의 개통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 단축에서 오는 삶의 기대감 이면에는, 느린 것은 여지없이 평가절하 되는 오늘날의 사회 풍조에 때한 씁쓸함이 없지 않다. 과거 장시간 기차여행을 앞두고 설레었던 마음과 정성들여 준비했던 삶은 계란, 친구와의 담소에 대한 기대와 기차 밖 풍경 감상은 이제 기대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와 반대로 버스는 때론 교통체증과 사람들 간의 부딪침으로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이다. 장시간 버스 안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주변 풍경 감상과 더불어 지나간 추억을 되새기는 멋진 추억여행이 된다.
한 번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려는 성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창밖을 보며 버스에 몸을 실어보는 것은 어떨까. 다 같이 버스를 타고 일상 속의 나들이를 떠나보자.


649번 → 600번 → 달성 5번 ⇒ 유가사

지난 15일 오전 10시 무렵. 우리대학 앞에서 649번 버스를 탔다. 비슬산 자락에 위치한 유가사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유가사는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사찰로, 평일에는 운행 버스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지역 관광지다. 이 절은 신라 흥덕왕 2년에 도성국사에 의해 창건된 절로,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을 닮았다’하여 옥 유(瑜), 절 가(伽)자를 사용해 유가사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버스 창밖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곳은 이미 버스여행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나있다.


# 새로운 다짐을 만들고
649번 버스를 타고 서부정류장에서 내리면, 600번 버스를 타야한다. 600번 버스는 칠성시장 양지 아파트에서 출발해 서부정류장, 경북기계공고을 지나 현풍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 일단, 버스를 타면 가장 편안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잠을 자고 싶을 때는 제일 뒷좌석 앞, 친구와 수다가 떨고 싶을 때는 맨 뒷좌석에 앉는 것이 제격이다. 빽빽한 빌딩과 자동차들의 이동 모습이 지겨울 땐, 음악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빠져도 좋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드는 여러가지 생각들은 잠시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곧 새로운 다짐으로 재탄생한다. 이 순간 버스는 교통수단을 띄어 넘어 어느 사이 추억과 꿈을 싣는 타임머신이 된다.
서부정류장에서 약 1시간 20분을 달리면 종점 현풍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빌딩 속에서 시작됐던 나들이가 시간이 지나 한적한 거리를 만나고, 이윽고 산과 계곡을 마주하게 될 때는 여간 상쾌한 것이 아니다. 현풍시외버스터미널은 시골 냄새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시내버스임에도 정차시간을 적어놓은 운행시간표, 조금한 구멍가게, 어르신들의 정다운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곳만의 매력이다.
터미널 벽에 유가사행 달성 5번 운행 시간표가 붙여있다. 이 버스를 타야 최종 목적지 유가사에 도착할 수 있다. 달성 5번 버스는 이른바 오지 노선으로 불리는데,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5번만 왕복 운행한다고 전한다. 오지 노선은 대구 지역 중 인적이 드문 곳을 운행하는 것으로, 운행 횟수가 적은 것은 당연하고 버스 분위기와 주변 풍경도 일반 버스와는 사뭇 다르다. 젊은이들을 향해 “할머니 들어오신다. 다 일어나라”라고 당당히 외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오지버스만의 특징이다.

# 승객을 통해 찾는 또 다른 ‘나’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 안 탑승객을 보는 것은 버스 나들이의 가장 큰 매력.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무작정 세워달라는 할머니, 휴대전화로 수다 떨기에 여념 없는 여학생, 무얼 생각하는지 연신 싱글거리며 음악 듣는 남학생 등 그 속에 나의 모습이 있음을 발견한다.
마침 유가사로 단합대회를 왔다는 영진전문대학 기계응용계열 2학년 한 학생은 “오랜 시간 버스를 타면서, 지하철에서 느꼈던 답답한 기분에서 벗어나 주변 친구들과 대화, 주변 풍경 감상에 좋았다”며 버스 이동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2시간 30분이 지나자, 멀리서 비슬산과 유가사가 보인다. 주변엔 산을 병풍으로 삼아 논이 펼쳐져 있고, 맑은 공기와 하늘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숨통을 트게 한다. 버스 나들이를 하는 동안 보았던 사람, 풍경, 추억은 어느 사이 새로운 삶의 에너지로 변화되고, 주변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은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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