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시절]학생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변화 커
[그 때 그시절]학생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변화 커
  • 편집국
  • 승인 2007.05.2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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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필자와 같은 경우, 중국어를 공부한다고 하면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영어나 불어 독어 같은 선진국의 외국어 보다는 훨씬 뒤떨어진 나라의 말을 공부하는 남보다 무엇이 좀 열등한 사람 같은 대우를 받았다.
대학의 중문학과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우리 누님이 하신 첫 마디가 “야야! 니는 앞으로 출세하기는 다 틀렸구나! 미국에 유학 갈 수가 없으니!” 였고, 어른께서는 늘 “야야! 그거 해봐도 별 수 없는 것 치우고, 딴 걸 해바라! 영어나 독일어를 하면 학원 선생해서 돈이라도 벌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니 시골에서 어렵게 서울까지 올라가 궁하게 학교를 다니는 판에 힘이 날 리도 없고, 사실 미래에 대해서도 늘 불안한 생각이 앞섰다.
당시에는 전국에서 중문과라고 있는 학교라야 겨우 세 곳 뿐인데, 내가 다닌 학교의 경우, 14년 동안 중문학과라는 것이 명맥은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졸업한 사람 수는 한 해에 불과 2,3명 정도이고, 또 졸업을 하고서도 사실 이렇다할만한 전공과 관련이 있는 직장도 없었다. 그러니 같은 과에 다니던 친구들도 보면, 대개가 커트 라인이 좀 낮기 때문에 지원하였거나, 제2지망으로 밀려온 학생들이 대부분인지라 거의가 전공보다는 영어 공부나 취업에 유리한 과목만 공부하지, 전공과목에 대한 열의는 별로 없었다.
나도 물론 커트 라인이 낮기 때문에 중문과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는 기대와, 한문 고전을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그래도 힘닿는 데까지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 회고하니 그런 공부도 주변에서 누가 열심히 하면서 이끌어 주거나, 친구들 사이에서라도 서로 자극을 주고받았더라면 훨씬 더 능률적으로 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이러한 상황은 내가 대만에 가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70년대 초에 교수가 된 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까지 계속되었다. 76년에 영대에 중문과가 생기고, 78년 봄에 내가 영대로 옮겨왔는데, 그 해 처음 열린 전체 교수회의에 들어갔더니, 당시의 김기동 교무처장의 학사보고에 “중문과를 위시한 몇몇 학과에 정원미달 사태가 걱정스럽기는 하였지만...”하던 말이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제2외국어로서 중국어는 별로 인기가 없어 늘 개설해 놓고도 몇 반씩 폐강되었고, 비록 중문과에 적을 둔 학생들이라도 전공만 하다가는 취직을 못한다고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나는 학생들의 불만을 다소나마 무마시키면서도 전공과 다소 관련된 것을 공부시킨다고, 영어로 쓴 중국관계 저술을 교재로 쓴 일이 있는데, 중국어로 쓴 책만 가지고 가르칠 때보다도 훨씬 더 좋아하였다. 하기야 중문과에서 내용만 좋으면 영어로 된 책을 교재로 사용해도 안 될 것이야 없지만, 학생들이 중국어로 된 책보다 영어로 된 책을 더 좋아하고, 그것도 취직 영어 공부의 한 방편으로 중문과에서 영어책을 교과서로 쓴다고 생각하니 좀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중국 공부를 시작한 게 거의 50년에 가깝고, 영대에서 가르친 것도 30년에 가깝다. 정년퇴직까지 하고난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각 대학에서 중국에 관한 열풍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 열풍도 중국을 알면 취직이 좀 잘 된다는 것에 그치지, 정말 중국을 옳게 알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중국을 옳게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책을 읽어야 한다. 책 중에도 중국인의 지혜를 담은 고전부터 먼저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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