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vs 충무로 한국영화, '내일이 없다'
헐리우드 vs 충무로 한국영화, '내일이 없다'
  • 편집국
  • 승인 2007.04.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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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와 스크린쿼터
20세기 초는 유럽영화의 전성시대였다. 영화를 제일 먼저 만든 프랑스, 늘 세계영화사의 첫 장에 나오는 러시아의 에이젠쉬쩨인, 독일의 프릿츠 랑의 표현주의 영화, 드라큘라영화문법을 처음 만든 무르나우 감독의 영화, 프랑스의 르노아르 감독 등 20세기 초는 유럽영화가 한창 잘 나가던 시대였다. 그러나 파시즘과 나치즘이 발흥하면서 프릿츠 랑 등 유럽의 유명영화 감독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면서 영화의 중심지는 미국의 할리웃으로 옮겨간다. 물론 유럽 영화가 다 사그러든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 ‘뉴 웨이브운동’이 일어나고 프랑스의 브레송, 독일의 파스빈더, 스페인의 브뉘엘 등과 함께 유럽영화는 꾸준하게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계 영화시장은 서서히 미국의 할리웃 영화에 장악되어가기 시작한다. 물론 그 시점을 정확하게 20세기 중반 이후, 즉 세계 제 2차대전 이후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그 전부터 에이젠쉬쩨인을 만나러 구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고, 할리웃 필름을 구 소련에도 수출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영화의 흐름을 미국이 무역 문제와 결부시켜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나고 브레튼우즈체제 하에서 1948년 GATT 즉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이 만들어지면서부터 미국은 무역과 영화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GATT로 인해 국제무역의 자율화가 촉진되었지만, GATT는 예외조항이 많았고, 이 때문에 무역의 자유화를 저해하는 요소가 많다는 미국의 주장에 밀려, 1980년대 말 우루과이라운드체제로 변하기 시작한다. 가령 섬유업종에 쿼터를 둔 예외조항처럼 GATT 제 4조를 통해 각 나라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든 것이다. 이 조항 또한 다른 업종들의 쿼터제와 더불어 GATT에서 국제무역의 저해요인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세계의 각종 무역기구들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에게 스크린쿼터제는 눈의 가시였던 것이다.

말이 ‘자유’무역이지 사실상 미국의 지배력 아래에 있던 브레튼우즈체제 하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대하여 무역개방을 강제하고 있었다. ‘자유’무역이 아니라 무역의 ‘강제개방’이었던 셈이다. 최근 FTA 정세에서도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문을 열라고 요구하면서도 가령 호주와 FTA를 체결할 때에는 자기 나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농산물개방을 무려 ‘18년 동안’이나 유예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말 한 마디에 문을 활짝 열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빗장까지 풀어주고, 더 나아가서는 비밀, 거짓말,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과대포장선전으로 일관하며, 방송언론까지 장악하면서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는 절차를 더욱 다져나가고 있다.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이 이렇듯 얼토당토않은 방식으로 미국에 팔아넘기기 전까지 일 년 중 146일 동안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가 극장가에 걸리게 해주는 조치였다. 그러나 미국은 그 146일을 73일로 축소시키라고 요구했고 이 요구를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협상 조건으로 미국에게 양보한 것이다. 한미FTA협상 ‘조건’이라고 했지만 미국이 만든 ‘조건’을 우리가 무조건 ‘충족시켜줘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데도 365일 중의 146일이라는 ‘쿼터’를 73일로 축소시킨 것이다.

한국은 그 동안 전 지구적으로 스크린쿼터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탈리아를 필두로 없어지기 시작한 스크린쿼터제는 영국, 캐나다, 프랑스, 뉴질랜드 등을 거쳐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지만 한국은 GATT 이후 그리고 브레튼우즈체제가 1995년 WTO체제로 바뀔 때까지 미국과의 각종 협상에서도 살아남다가 이번에 무너지게 된 것이다. 146일이 73일로 절반 줄어들었으므로 73일이 남았고 그 만큼 한국에서 제작한 영화를 극장에 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영화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스크린쿼터가 사실상 제로로 되고 스크린쿼터제가 아예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 영화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2004년 기준 50%를 넘었다. 스크린쿼터제가 40%를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시장점유율은 10%가 넘는 정도다. 겉으로 보면 50%가 넘었으니 한국 영화가 잘 나가도 참 잘 나간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한국 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를 넘지 못한다. 한국의 스크린쿼터제가 축소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할리웃 영화는 세계시장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잘 나가는 것은 미국의 할리웃 영화고 그것은 할리웃 영화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GATT 이후 다른 나라들의 영화시장을 미국이 하나하나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평균제작비가 40억이고 할리웃 영화의 평균제작비는 6백억이다.

그러면 GATT 체제 이후, 도대체 영화가 뭐길래 영화를 국내 극장에 걸고 내리는 문제에 왜 미국이 저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미국이 현재 요구하는 것은 전 세계영화시장의 완전 제패다. 90%가 아니라 100%를 할리웃 영화가 장악하고자 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DDA(도하개발아젠다)에서 식량, 물, 영화를 상품으로 취급하자고 계속 요구해왔고, MAI(다자간투자협정), 1998년 BIT(한미투자협정)에서 계속 한국의 스크린쿼터제에 딴지를 걸었다. BIT가 보여준 것처럼 미국은 GATT체제 이후 진행시켜 온 ‘다자간’ 무역협상에서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시애틀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가 반세계화운동에 의해 좌절되자, 다자간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는 일대일 전략으로 협상전략을 바꾼다.

한미FTA를 포함해 현재 120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FTA는 그런 이유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즉 일대 일로 한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미국이 부각시킨 것이 바로 스크린쿼터제다. 두 번째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작년 2005년 10월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이 체결되면서 이러한 미국의 진로에 큰 장애물이 생겨났다. 각 나라의 문화적인 종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국제협약이 통과된 것이다. 회원국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만 반대표를 던지고 통과했지만 반대표를 던진 미국도 147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협약을 지켜야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네스코의 국제협약을 지켜야 할 것인지 FTA로 한국을 각개격파해야 할 것인지 갈림길에 선 미국은 국제협약의 규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한국에 FTA 전제조건이라며 스크린쿼터제 축소를 요구한 것이다.

초창기 홈스테드법처럼 남의 땅을 빼앗으며 탄생한 나라 미국은 20세기 내내 그 홈스테드법을 전쟁과 영화로 확산시켰다. 전쟁과 영화로 해서 생겨난 전 지구적 공간을 침탈해온 것이다. 이라크전쟁으로 전쟁의 명분이라는 약발이 세계에 통하지 않고 스크린쿼터제의 마지막 보루인 한국마저 무너뜨린 미국에게는 이제 자국의 농민을 필두로 하는 아메리카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규모가 8조를 넘어서고 소득분배불평등을 나타내는 미국의 지니계수는 0.4를 넘어가 있다.
이미 미국은 국가파산 상태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런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득재(대구카톨릭대학교 외국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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